
옥타곤 박물관 전경. 건물 모형이다. 아무리 보아도 8각형은 아닌데... 제임스 메디슨 미국 4대 대통령. 제 2차 미영전쟁 때 백악관이 불타버려 1814년부터 1815년까지 부인과 함께 이곳에 머물렀다. 마스터 베드룸인데 전시실로 쓰이고 있다. 역사 박물관에 전시된 돌리 메디슨 드레스. 1815년 평화 조약이 벨기에에서 타결되고 평화는 왔지만 실질적으로 바로 이 함에 든 서류에 평화조약 사인을 대통령이 하도록 미국으로 보냈고 메디슨 대통령이 사인을 한 것은 1816년이었다. 아주 역사적인 함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전쟁통에 불타버린 백악관
갈곳없는 메디슨 대통령 부부
이곳서 2년동안 머물러
의사당 설계한 손턴이 디자인
나의 집에서 남쪽 방향으로 차로 5분 정도를 가면 돌리 메디슨 대로(Dolley Madison Blvd)를 만난다. 거기서 우회전해서 약 10분 정도 가면 미국의 4대 대통령 이름을 딴 제임스 메디슨 고등학교(James Madison High School)가 있다. 나의 아들과 딸이 이 학교를 졸업을 했다.
그리고 반대로 좌회전을 해서 약 5분정도를 가면 워싱턴 파크웨이라는 아주 낭만적인 도로가 나온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10분정도 가면 워싱턴 DC의 콘스티튜션 애비뉴(Constitution Ave)가 되는데 23가로 시작된다. 5 블럭을 내려가 18가에서 좌회전해서 3 불럭을 가면 옥타곤(Octagon)이란 건물이 눈앞에 보인다. 길이 안 막히면 나의 집에서 약 25분 정도 거리이다. 그리고 몇 블럭 더 가면 백악관 뒤쪽이고 부통령 사무실 건물이다.
옥타곤은 도대체 어떤 건물인가? ‘1785년에 영국에 이튼 고등학교, 케임브리지 대학에 유학을 했다’라는 말로 존 타일로(John Tayloe 3세) 라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설명될 것 같다. 그의 요청을 받고 미국 국회 의사당(U.S. Capitol)을 설계한 윌리암 손턴(William Thornton)이 설계해서 지은 집이 바로 옥타곤이다. 그런데 왜 그리 유명한가?
백악관 불타다
1812년부터 1815년까지 소위 제 2차 미영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1814년 영국군이 백악관까지 쳐들어 와서 불을 질렀다. 그리고 역사에는 제임스 메디슨 대통령은 메릴랜드 어느 곳에서 영국군 퇴치를 위한 군사회의를 하고 있었고, 부인 돌리 메디슨은 영국군이 쳐들어 오기 몇 시간 전에 챨스 캐롤 소령이 달려와 조지타운에 있는 덤바턴 하우스(Dumbarton House)로 피신시켜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포토맥 강을 건너 버지니아로 피신했다고 한다.
그리고 늦은 밤에 버지니아의 어느 여관에 갔는데 ‘내 아들은 지금 영국군과 싸우러 나갔는데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당신을 내 여관에 자도록 할 수 있겠오’ 하면서 거절했다 한다. 글 쓰는 사람의 특권으로 말하여야겠다. 아무 자료가 없지만 돌리 메디슨이 도망간 길이 약 16마일 정도라니 그 길이 내가 다니고 있는 돌리 메디슨 길(Dolley Madison Blvd)이 아닐까? 그녀에게 방을 내 주지 않은 여관이 내 아들, 딸이 다니던 제임스 메디슨 고등학교 자리가 아닐까?
영국군이 물러난 후 메디슨 대통령 부부가 머무를 곳이 없었는데 바로 옥타곤의 주인 존 타일로가 자기 집을 백악관의 수리가 끝날 때까지 쓰게 했다. 그래서 1814년부터 1815년까지 이곳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불타서 까만 대통령 관저를 하얀색으로 칠하게 했으니 그래서 그로부터 백악관이라 불리게 됐다.
여기서 부연해서 돌리 메디슨 대통령 부인과 제 2차 미영전쟁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돌리 메디슨 대통령 부인
그녀는 1768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퀘이커(Quaker)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행실이 자유분방하여 ‘악마의 유혹’에 빠졌다고들 했다한다. 아버지를 따라 필라델피아로 이사를 가고 그곳에서 퀘이커교의 변호사 존 토드와 결혼해서 두 아들을 두었으나 황열병(Yellow Fever)라는 전염병으로 남편과 아들 하나를 잃는다. 그 후 17세 연상의 제임스 메디슨이란 주 하원의원과 결혼했다. 그가 토마스 제퍼슨이 대통령이 되자 국무차관이 되고, 그 때부터 돌리 메디슨이 홀아비가 된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시작해서 사교계의 꽃이었고, 당시 유럽 여러 왕국과 관계를 하는 의전부터 실내 장식까지 미국의 이미지를 고양하는데 많은 공적을 남겼다. 12대 대통령 자카리 테일러(Zachary Taylor)가 재임하고 있을 때 즉 1849년에 81세로 사망할 때까지 그녀는 돌리 여왕(Queen Dolley)으로 불렸다. 미국 역사박물관에 가면 그녀의 드레스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2차 미영 전쟁(1812--1815)
프랑스의 나폴레옹 시대에 미국이 프랑스와 교역을 하는 것을 영국이 해상봉쇄를 해서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된 전쟁이다. 그리고 미국 군함 콘스티튜션 호 가 영국 군함 케이에르 호를 격파한 첫 교전 후, 두 번 해상 교전에서는 미국이 졌다. 그러나 영국도 프랑스와 싸우느라고 관심도 없고 해서 소강상태로 있었다. 그러다가 1814년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영국의 6,000명이 메릴랜드 체사픽에 상륙해 블래던스버그 전투에서 이기고 여세로 워싱턴의 백악관까지 진군했었다. 그러나 악천후로 머물 곳도 없고 해서 그냥 철수했다.
당시 미국은 이미 700만의 인구이고 광활한 땅이라 영국으로서 장기간 싸워 보았자 이길 공산도 적고 또 얻을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전쟁이 흐지부지 되고 이듬해 벨기에 겐트(Ghent)에서 평화 조약으로 끝냈다. 이 전쟁 때에 프렌시스 스캇 키라는 변호사가 포로교환 협상 차 영국 함대에 올랐는데, 마침 영국군이 멕핸리 요새를 포격하려든 참이라 그 배에서 꼼짝 못하고 포격을 보아야 했다. 다음날 아침 포격에서 끄떡하지 않고 성조기가 펄럭거리자 그가 감격해서 쓴 시가 바로 미국의 국가이다.
O! Say can you see by the dawn…
옥타곤 박물관은 이렇게 역사적 현장에서 증인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그 안에 전시물이나 남겨진 역사적인 것은 별로 많지 않다. 그저 그곳에서 숨 쉬는 역사를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 현재로는 미국 건축협회가 소유하고 있다.
●주소: 1799 New York Ave NW Washington DC 20006
●문의: (202)626-7439
●개장시간: 1- 4 PM(목-토요일까지 3일만 문을 연다)
●입장료: 무료
●주차: 바로 앞에 미터기가 있고, 비교적 쉽게 빈 곳을 찾을 수 있다.
이 영 묵
미주 서울대 총동창회장 역임
워싱턴 문인회 회장 역임
한국 소설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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