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시대 활짝
▶ 70대에도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 한인 2인
생활환경 및 의학의 발달로 현대는 장수시대가 됐다. 이는 단지 인간 수명의 연장만이 아니라 신체 또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해져 ‘60세 청춘’이란 말이 허구에서 진실로 변했다. 이제 60대는 노인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건강한데다 젊은 층 못지않은 활동을 유지하고 있어 한인사회에서 환갑잔치는 사라진지 오래고, 칠순잔치도 드물게 됐다. 적어도 팔순은 넘겨야 어른 대접도 받고 장수한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한인사회는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장수시대와 고령사회의 도래는 사회보장연금을 받을 수 있는 65세를 전후해 은퇴하는 풍속도도 바꿨다. “기운 있는데 은퇴가 왠 말이냐”며 70을 넘겨서도 현역에 남아있는 한인들이 늘고 있다. 80을 눈앞에 두고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영원한 젊은이’들을 소개한다.

정봉환 대표가 리커스토어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가지 꾸준히 하면 길 보여
걱정 안하고 사는게 건강비결
정봉환 <79, B&Y 리커스토어 대표>
“돈 버는 것보다 움직이고 일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팔순을 목전에 둔 정봉환 대표는 25년 전 구입한 볼티모어 시내 B & Y 리커 스토어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다. 증권회사 다니던 차남 정재준(46, 미국명 필립) 씨가 10년 전부터 운영을 맡아하고 있지만, 정 대표는 부인 정연자(75) 씨와 함께 나와 근무한다.
이 업소는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열어 오후 9시까지 영업한다. 정 대표 내외는 월-토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주 6일을 꼬박 나온다. 1973년 도미한 정 씨는 트랙터 트레일러 정비사로 5년간 일하다, 그로서리와 캐리아웃을 거쳐 1990년 1월 1일 현 업소를 매입했다.
“경험 없는 곳은 엄두가 안 나서 한 길을 계속 팠다”는 정 대표는 “한 군데서 오래 일하니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종업원 5명과 함께 근무하기 때문에 일하는데 어려운 건 없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건강해서 다행”이라며 “걱정 안하고 사는 것이 건강 비결”이라고 말했다. 부인 또한 남편이 만사태평이라고 거든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정 대표는 “일하니까 더 건강해진다”며 “건강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나가면 친구들이 일찍이 은퇴해 경제적 능력이 약한데 비해 자신을 그렇지 않아 뿌듯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주 2회 골프 라운딩에 매일 걸으며 건강을 유지한다는 정 대표는 장대한 체격에 비해 고혈압이나 당뇨 증세가 없다고 자랑한다. 한 때 싱글도 친 골프실력은 지금도 90대 중후반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젊은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아내가 건강해 함께 일할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라며 “부부가 늘 함께 있지만 금슬에는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여성의 의견을 존중해야 불화가 없다”며 “특히 여성은 센스가 남성에 비해 더 빠르므로 사업할 때 여성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연자 씨는 “애들은 엄마가 봐야한다”며, “손자들을 봐달라는 며느리의 부탁에 오히려 며느리더러 애를 보라하고 일을 나온다”며 웃었다. 정 씨는 “할머니 손에 크면 응석만 는다” 며 “집에서 애를 보는 노인들은 허리병이 많은데 나는 그런게 없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젊어서 고생을 무척 했지만 낙천적으로 살았다”며 “한 가지를 꾸준히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고 젊은이들에게 조언했다.

김용오 대표가 웨어하우스에서 직원을 격려하고 있다.
어려움 닥쳤을땐 신앙으로 극복
운동과 긍정적-낙천적 사고가 중요
김용오 <74, Eastern Food Services 대표>
로럴 소재 식품도매회사인 이스턴 푸드 서비스의 김용오 대표는 “지금도 가만있지 못한다”고 말한다. “늘 새롭게 도전해왔다”는 김 대표는 아직도 연매출 4,500만달러에 직원 70여명의 회사를 이끌며 새로운 사업계획을 구상하는 등 일선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6년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근무일은 주3일로 줄였지만, 회사 구석구석 김 대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나머지 날들도 교회(지구촌교회)와 자신이 설립한 비영리단체 활동으로 채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워싱턴지구촌교회 안수집사인 김 대표는 2002년부터 국제전도폭발미주한인본부 총무로 작년까지 활동하다 올해 후진에게 넘겨주고 간사로 지원하고 있다. 그는 4년전 비영리단체인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들 재단(Good Sower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선교사역자들을 훈련 시켜 세상에 보내는 것을 목적으로 매년 5명 가량의 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건강한 목회를 준비하는 목회자를 후원한다.
1972년 1월 워싱턴으로 도미한 김 대표는 1975년까지 식품도매상에서 근무하다 눈여겨본 플로리다 서북부 포트 월턴 비치에서 동양식품점을 열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곳에는 공군기지가 있어 국제결혼한 한국여성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보다 적어 장사가 잘되지 않아 접을려고 마음먹을 무렵 월남 패망으로 인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가게 물건이 하루 아침에 동나고, 가게는 번창했다. 하지만 그곳이 휴양지여서 월남 사람들이 직업을 못구해 떠나가면서 다시 위기가 닥쳤으나 이번에는 미국이 태국에 공군기지를 건설하면서 태국 여성들이 건너와 또 살아남았다. 태국인 식품점이 생겨 경쟁으로 어려움이 닥치자 이번에는 태국인 식품점 업주에게 가게를 매각하고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한인교회가 없었다는 점도 귀환의 요인이었다.
1979년 메릴랜드 로럴에서 동업으로 두부공장을 시작한 김 대표는 1983년 워싱턴에 생선도매회사인 이스턴 시푸드(동해물산)를 설립했고, 1989년에는 생선 수입업체인 이스턴 임포트를 설립했다. 또 식품도매업에도 손대기 시작, 1997년에는 학교 급식 식품을 납품했고, 2003년 현재의 이스턴 푸드 서비스를 창립했다. 볼티모어 캐리아웃들을 대상으로 하는 볼티모어 지사를 2005년 문 열었고, 올 1월에는 로럴 새 사옥으로 이전했다.
승승장구하던 사업은 수년전 볼티모어시 학교급식 납품이 중단되면서 위기를 맞았으나 이 역시 해결돼 지금은 납품을 계속하고 있다. 김 대표는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이 해결해주셨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할 것”이라며 “열정과 계획, 비전,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강비결로 “늘 긍정적으로 사는 것”을 들었다. “어떤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그는 아침에 최소 30분 기초운동 후 2마일을 걷고 콜럼비아의 한 헬스클럽에서 운동, 수영, 사우나 등으로 건강을 다진다고 한다. 또 음식은 알칼리성 80%, 산성 20% 비율을 유지하도록 먹고 있고, 아침은 제철 과일, 점심은 샐러드, 저녁은 닭가슴살, 계란 등 가벼운 음식으로 식사한다.
영양보충제(프로틴) 건강식품, 바나나와 스넥바를 늘 갖고 다닌다
그는 “젊은 세대는 단것만 보고 힘든 일은 안하려 한다한다”며 “젊었을 때 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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