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들어간 백서 편집위 잡음
결국 독선-일방적 내용 문제돼
연방정부 상대 캠페인 우려 고조
한인사회 분열 깊어질까 걱정
“한국 강연, 모금 중단하라”
“올 것이 왔다.” 5.16 군사정변 소식에 청와대 윤보선 대통령이 읊조렸다는 말이 새삼 떠올려지는 병신년 정초다.
워싱턴 한인사회에서 한인연합회를 비롯한 18개 주요 단체들이 12일 동해백서 관련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동해백서가 왜곡되고 동포사회를 분열시켰다면서 사과와 배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또 동해백서 발간을 주도한 ‘미주한인의 목소리’ 피터 김 회장에 대해 동해병기와 백서 발간을 전후한 모든 수입 공개도 요구하고 나섰다. 덧붙여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금전 지원 자제 요청과 함께 피터 김 회장의 모국에서의 강연과 모금활동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2년만에 깨진 축배
이들이 발표한 성명서에는 ‘피터 김의 개인적인 이권행동’ ‘기만행위’ 등등 정제되지 않은 날선 표현들이 툭툭 튀어 나와 있다. 감정을 억제하려는 흔적이 역력하지만 두터운 이성의 천으로도 다 가리지 못할 정도다.
‘동해 백서’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버지니아 주 의회에서 공립교과서의 동해병기법안 통과란 역사적 성취를 이룬 게 2014년 2월이었다. 환희와 화합의 축배가 넘치고 몸에 겨울 정도의 찬사가 쏟아진 게 불과 2년 전이다. 도대체 무엇이 ‘동해병기’란 쾌거의 서명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축배의 잔이 깨진 걸까.
백서 편집위원회 사태
되돌아보면, 분열의 창문은 ‘동해 병기’가 아니라 ‘동해 백서’를 통해 제쳐 졌다. ‘미주 한인의 목소리’가 백서 발간을 위한 편집위원회 구성안을 발표하면서 깊은 우려와 탄식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성명서에서도 지적했듯 편집위원회의 구성은 편파적이었다. 동해병기를 위해 함께 노력한 한인사회의 다양성, 전문성이 배제되고 피터 김 회장의 친소 관계에 의해 편집위가 저급하게 구성됐다는 게 한인사회의 인식이었다.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수준 높은 백서발간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했다. 편집위를 재구성하고 백서 발간을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피터 김 회장의 ‘의지’는 굳었다. 이러한 한인사회의 우려에 그는 소수로 몰아붙였고 동해병기를 방해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피터 김 회장의 ‘소신’은 동해병기 캠페인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열정과 겸손, 헌신의 모습과는 뜻밖의 태도였다.
“옥동자가 아니라 흉물”
숱한 논란과 염려를 뒤로 하고 백서는 2015년 늦봄 출간됐다. 뚜껑을 열자 백서는 아름다운 재앙이었다. 판도라의 박스처럼, 열린 페이지마다 금단의 단어들과 이름, 사진들이 튀어나왔다.
동해병기 캠페인에서 이름만 걸친 사람들이 일등공신이 되고, 누구보다 헌신했던 단체나 개인들은 삼등 공신 목록에서도 밀렸다. 한국 정부와 대사관은 ‘매국노’ 수준까지 몰렸다. 동해병기 캠페인에 큰 도움을 준 한 인사는 해방후 미국으로 도망쳐 온 일본계 후손이란 혐의까지 덧씌워졌다. 어떤 이는 백서를 읽다 집어던졌다고 할 정도였다.
“동해백서는 옥동자가 아니라 자화자찬과 편파성, 사적인 친분에 따른 과장과 축소로 얼룩진 흉물로 동해병기를 위해 헌신한 모든 워싱턴 한인의 노고를 담은 작품이 아니라 피터 김 회장 일방의 주장과 독선의 결과물이었다.”
이번 성명서는 동해백서 내용을 조명한 워싱턴한인사회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홍일송씨와 경쟁적 강연
문제는 백서 발간에 그치지 않았다. 피터 김 회장의 ‘한국 캠페인’도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동해 캠페인 이후 수차례 한국을 방문해 수십 차례 이상의 강연과 모금활동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동해 영웅’의 나들이에는 극진한 환대와 찬사가 쏟아졌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강연마다에는 적지 않은 강연료가 지급되는 게 관행이기도 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버지니아한인회장을 지낸 홍일송 씨도 한국에서 동해병기 강연을 하고 다녔다.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이 동해병기의 주역인 양 경쟁적으로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이들이 성명서에서 “동해 운동은 동포 개개인의 투표권을 기반으로 한 순수한 주권운동으로 개인의 공적화나 이기주의적 이권 개입을 배격하고 본국에서의 기만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한 것이나 “홍일송 전 회장은 한국에서의 황당하면서도 경쟁적인 동해병기 강연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것은 동해병기 성과를 마음대로 팔아먹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인 셈이다.
국제사회 문제화
이번 성명서가 나온 배경에는 피터 김 회장이 미 연방 정부에서의 동해병기를 위한 100만명 백악관 청원운동을 시작한 것도 무관치 않다. 이는 미 정부를 먼저 공략한 후 국제수로기구(IHO) 에서의 동해병기를 이뤄내겠다는 계획의 일환이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한국에서도 조직 결성에 참여하는 등 한국과 연계한 동해병기 캠페인을 전개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움직임에 워싱턴 한인사회는 “동해 병기는 한두 사람의 공명심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며 “연방정부를 상대하게 되면 한 개 주의 범위를 넘어 미국과 한국, 일본의 문제로 확대되면서 국제사회 문제화가 된다”고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미국이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중 봉쇄전략을 노골적으로 실현하려는 미묘한 국제정세 속에서 교각살우의 무모한 모험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다 욕을 당하는 검로지기(黔驢之技)의 고사를 돌아다봐야 한다는 뜻이다.
또 “미주한인사회의 파워를 지나치게 과신했다가는 오히려 미주한인들이 미국 정치권과 사회에서 고립되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며 버지니아 캠페인 당시 워싱턴포스트에서 사설로 한인사회에 동조하는 미 정치인들을 비판했던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훼방꾼들
피터 김 회장은 이러한 한인사회의 지적과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의 캠페인’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동해병기의 주역이란 달콤한 애국적 찬사에 둘러싸인 그에게 성명서를 발표한 이들은 훼방꾼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명분이든 간에 동해백서 발간을 둘러싸고 워싱턴 한인사회가 입은 상처와 분열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를 ‘외로운 영웅’이 되게끔 방관하거나 ‘공공의 적’으로 모는 것은 온당치 않다. 동해병기 캠페인에서 보여준 피터 김 회장의 빛나는 투혼과 헌신이 더욱 빛이 나려면 지금이라도 그는 다시 정다운 한인사회와 머리를 맞대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힘은 모일 때 쓰는 법이다. 그 때는 머지않아 올 것이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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