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후 한국 TV를 자주 보면서도, 요즈음은 TV 켜기가 주저된다. 요란스런 노래와 댄스의 파노라마가 화면을 뒤흔든다. 채널을 돌리면 이번엔 정치판의 막장싸움이다. 다음 뉴스에선 끊이지 않는 범죄 현장의 CCTV 화면이 계속된다. 채널을 돌리면 이번엔 리어카에 폐지를 싣고 힘겹게 끌고 가는 초점 잃은 눈빛의 노인이 나온다. 조화와 균형을 잃은 극과 극의 사회이다.
모두들 한곳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계속의 시침이나 분침은 보이지 않고 초침만이 뛰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빠르게 변해갈까?70-80대는 6.25전쟁을 겪고 온갖 시련을 헤치며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왔지만 지금의 빠른 변화의 물결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산업화의 과정을 거쳐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교육수준도 높은 나라에서 도무지 안정감이 없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
사회라는 굴레 안에서 흐름에 딸려가다가, 인생의 가치나 목적을 잃은 채 어느 초라하고 생경한 곳에 팽개치듯 버려진 낙오된 삶, 외로움과 분노와 소외감의 스트레스로 가득한 삶의 반향을 TV뉴스에서 현장중계로 보여준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한국은 유태인 못지않은 타이거 맘들의 나라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깊이 멀리 생각해볼 문제이다. 성공과 돈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그 이외의 인간으로의 행복한 삶은 TV나 영화 속 가상의 세계에서나 찾아야 할 것 같다.
부모가 자녀 한명의 양육과 교육, 결혼 등에 쓰는 돈이 20만 달러나 된다고 한다. 여기에 사립대학 학비까지 합한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젊은이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여기서 성인자녀들이 지나치게 부모에게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부모가 자녀에게 “재산 안 주면 맞아 죽고, 반만 주면 쫄려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다”는 웃지 못 할 말이 나올 정도다. 자녀를 출가시키고 나면 “아들은 큰 도둑, 며느리는 좀도둑, 손자들은 떼강도, 빚진 아들은 내 아들, 잘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이란 말은 더 씁쓸하다.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 말고 돈 다 쓰고 죽는다는 ‘쓰죽회’가 있다는데 놀랐었는데, 거기에 부모 자식 간에 효도계약서를 쓰는 집이 늘어난다고 한다. 가족끼리 믿지 못해 계약서까지 작성해야하는 끝장 세상이 된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라고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말했지만, 문제는 경제로 편향된 삶의 가치관일 것이다. 나라가 부강해질수록 중산층이 튼튼해야 잘 지탱이 될 터인데, 중산층이 차츰 사라지므로 허리가 약해져서 사회의 제반 문제가 더 생기는 것 같다.
한국은 2015년 기준 행복지수에서 조사대상 143개국 중 118위로 최하위권이다. OECD 34개 국가 중 삶의 만족도에서는 27위이며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는 한국이 자살률 1위다. 어디에서 왜곡된 가치관과 인성을 되찾을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BC 330년경 알렉산더 대왕은 죽기 전 “나를 묻을 땐 내 손을 무덤 밖으로 빼놓게. 천하를 손에 쥔 나도 죽을 땐 빈손이란 걸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말은 21세기에도 음미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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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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