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잔인한 달인가. 36년 전 1980년 그 해 봄은 거의 20년 가까이 어둠 속에 참담하게 움추렸던 삼천리 금수강산에 유난히 자유가 그리웠었다. 바로 전 해 궁정동의 총소리와 함께 잠시 맛본 “서울의 봄” 때문에. 그래서 조국의 남녁 빛고을의 시민들은 그 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여느 고을에서도 민주주의, 그리고 그 이상이 보장해 주리라고 기대되는 자유와 정의를 갈구하는 염원은 팽배했다. 다만 광주가 먼저 일어났을 뿐이다. 그러나 국민을 보호하는 마지막 보루인 군대는 무자비했다. 시민들의 두개골을 부수고, 어린 학생들을 무차별 사살하고, 심지어는 임신부의 복부에 총검을 꽂은 아 저 야수들. 저 광란의 광주대학살은 36년이 지난 오늘도 기억의 언저리에서 피가 튀는 소름 끼치는 만행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태양의 계절 5월이 오면, 우리는 망월동에 고이 잠들고 있는 그 날의 영웅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의 무지개보다 더 영롱한 꿈을 펴 보이리라는 다짐, 그것이 우리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 민주항쟁은 그 진실이 크게 왜곡, 최근에 와서는 “북한군의 침투에 의한 난동”이라는 주장이 일부 언론에서마저 언급되고 있는 있는 오늘의 슬픈 현실 때문에 망월동의 영령들은 고이 잠들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중은 새 역사의 지평을 열어가는 축복을 얻지 못 할 것이다. 망월동은 불의에 맞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 진실을 밝히고, 민주와 자유, 그리고 자주는 피를 흘려 투쟁할 때 쟁취할 수 있는 고귀한 성전의 전리품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광주를 민주항쟁의 선봉으로 재평가하여 역사의 찬란한 빛으로 민주주의를 밝히고, 마침내 통일로 전진하는 향도의 횃불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36개 성상(星霜)이 지난 오늘 이 위대한 5.18 광주민중항쟁은 당시 산화한 열사들의 고귀한 뜻이 아직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한국의 정치판은 광주와 무관한 궤적을 내닫고 있다.
저 광란의 군사독재 시절, 그것은 우리가 버둥거리며 힘겹게 살아온 과거이면서도 그러나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진행 중인 현재이기도 하다. 한국의 정치현실은 “과거”가 “오늘”을 지배하고 있다. 그토록 치열하게, 그토록 많은 생명을 민주 제단에 바쳤지만,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제에 머물고 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조국의 슬픈 초상(肖像)이다.
광주항쟁은 1945년 8.15 해방 직후 한반도를 점령한 미소의 분단 통치, 그 분단으로 인한 6.25의 동족상잔, 자유당 정권의 3선 개헌, 5.16 군사쿠데타 등 우리가 체험한 격동의 현대사가 안고 있는 모든 모순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의 표출이었으며, 우리민족이 더 이상 외세에 끌려다닌 역사에 매몰되기를 거부하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청산되어야 할 과거가 오늘을 버젓이 다스리고 있으며, 과거의 정치질서가 보다 큰 대 선단(船團)을 이루고 오늘 한국의 항해를 과거로 회항(回航)하고 있다.
한국의 민중은 지난 4.13 총선에서 현 정권의 과거회귀 행보에 분명히 부(否)표를 던졌다. 그러나 여소야대의 새 정국에 들끓던 기대가 서서히 냉각되고 있다. 금권과 유착된 정치권의 부정과 비리의 끊임없는 타협과 소위 “코아비타이옹.” 즉 이리와의 동거 유혹, 정당의 선단식 카르텔 형성에 따른 이해관계가 우선되고 있는 근간의 정당 행태는 플라토가 말한 “국가의 구성원에 봉사하는” 정치의 고전적 의미의 실종에 다름 아니다. 민중은 이제 정당이 그들을 대변해 주길 바라는 기대를 포기하고, 광주항쟁 때처럼 민중이 직접 역사의 주체가 되기 위한 투쟁에 직접 나서야 하며, 그 첫째 목표는 통일이다. 한민족 현대사의 모든 문제는 바로 분단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의 7천만 동포가 예속에서 자주를 찾고 “민족의 선(善)” 통일을 쟁취하려면, 조국의 민중들이 1980년 5월 빛고을의 거리마다 터져 나온 민주와 통일의 함성을, 그리고 그 함성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좌절의 늪에서 일어나 역사의 주체로서 투쟁의 고삐를 다시 한 번 조여야만 하겠다.
<이선명 US News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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