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옷에 성조기가 그려져 있다고 해서 미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이민정책에 대한 미국 올림픽 스키 대표선수 헌터 헤스의 비판이 일파만파다. 트럼프 대통령이 “(헤스가) 진짜 패배자”라며 공개 저격하면서다.
■ 이번 논란에,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는 한국계 스노보드 선수 클로이 김은 “우리 엄마 아빠도 이민자”라면서도 “나는 미국을 대표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다소 당황해했다. ‘제2의 린지 본’으로 불리는 스키선수 미카엘라 시프린은 “포용의 가치, 다양성과 친절과 나눔의 가치, 끈기와 근면함 같은 가치를 대표하고 싶다”며 즉답을 피했다. 반면 미국 대표로 뛰다가 이번 대회에 영국 대표로 출전한 스키 선수 거스 켄워시는 눈밭 위에 소변으로 ‘이민단속국(ICE) 꺼져버려’라는 문구를 쓴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살해 협박을 받았다.
■ 올림픽 선수들의 정치적 메시지는 오랫동안 억압됐다. 1968년 올림픽 육상 200m에서 1, 3위로 입상한 미국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인 채 검은색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올려 인종차별에 항의했다. 그러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출전 정지로 응수했다. 이어 1975년 올림픽 경기장에서 정치ㆍ종교ㆍ선전을 불허하는 올림픽 헌장을 제정해 ‘소신 발언’을 옥죄려 했다. 기준은 점차 완화됐는데 2022년 도쿄올림픽에서 여자 포환던지기 은메달리스트 미국 레이븐 손더스가 시상대에서 두 손으로 ‘X’자 표시를 하며 인종차별에 항의했으나 징계 없이 끝났다. 켄워시의 ‘ICE 비난’에 대해서도 IOC는 “규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가와 정부를 구별하는 정치적 신념 표현, 성적ㆍ인종적 정체성 드러내기 등 올림픽 대표선수들의 소신 발언과 행동은 더 잦아질 공산이 크다. 정체성 정치의 확산, SNS 발달 등과 맞물려서다. 정상급 선수들의 발언과 행동은 탁월한 플레이 이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혐오 발언이 용납돼서는 안 되겠지만, 소수자 가치 옹호ㆍ차별 금지 같은 소신 발언은 더 옹호받을 것이다. 통제하겠다는 발상이 머쓱해질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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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구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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