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에 뽑히자 부인 미셸은 “차별을 받아 왔는데 흑인인 남편에게 미국인들이 투표를 해준 것이 고맙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미국의 고질적인 인종문제를 솔직하게 끄집어 낸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영부인이 될 사람이 미국의 치부를 드러냈다며 비난의 화살을 쏟아 냈다. 상상조차 힘들었던 흑인 대통령 선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담아 애꿎은 미셸에게 화풀이 한 것이다.
미셸은 갱과 마약범죄가 판치는 시카고 남부 빈촌 사우스 사이드에서 시카고 수도국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 이곳에서 자란 미셸에게 인종차별은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는 명문 프린스턴과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다.
아이비리그의 최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 수많은 경멸과 인종 차별에 맞서며 싸워 왔을 것이다. 유세 내내 드러난 쏘아보는 사나운 눈매에 언제라도 싸우자고 달려들 듯 경직돼 있던 그의 얼굴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프린스턴 입학 첫 학기, 기숙사에서 백인 룸메이트 어머니가 한 달 넘게 룸메이트를 바꿔달라며 학교에 항의 소동을 벌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미셸이 남편의 당선에 감사하는 첫 인사말에 “차별을 받아 왔는데...”라는 금기어 같은 미국의 치부를 드러내 보인 것도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미셸도 흑인인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 같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의 고지를 넘어 8년 임기를 끝내가는 요즘, 미셸의 매서운 눈매와 도발적인 얼굴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두딸을 키우며 남편을 내조하고 저소득층 어린이들과 함께 뛰는 그의 모습은 미국의 여느 백인 영부인과 다르지 않다.
인종 차별 심한 미국에서 영부인 위치에 올라 8년 동안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그의 마음도 상당히 누그러졌던 것일까.
오바마는 대선 당시 ‘예스 위 캔’(Yes We Can)을 이슈로 전쟁과 경제 위기에 시름하던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흑인인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정치 고수의 힐러리 클린턴을 경선에서 제치고 원로 정치인 존 매케인을 누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쟁과 금융위기로 촉발된 증시 폭락의 불안한 상황에서 미국은 기존 정치인들 보다는 신선하고 젊은 버락 오바마를 선택했다. 흑인인 그가 전통 공화당 텃밭에서 조차 매케인을 제친 것도 변화를 통한 미국의 재도약을 갈구하는 상당수 백인 유권자들의 지지 때문이었다. 미국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그의 피부색이 아니라 가능성과 희망에 표를 던져 위대한 미국 건설의 깃발을 들게 했다.
미국은 또 한번의 변화를 선택했다. 진보 언론들이 그렇게 싫어하고 헐뜯으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 끌어 내리려던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언론들은 앞 다퉈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점치며 미국의 진정한 가치를 수호하게 됐다며 자찬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은 달랐다. 기성 정치세력에게 미국의 미래를 맡기기를 망설인 것이다. 그 결과 언론에서 금방이라도 나라를 망칠 것 같이 비방을 쏟아냈던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에 선출됐다. 변화와 혁신, 그리고 희망을 기대하며 흑인 대통령을 뽑았을 때의 심정과 같이...
세상은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변화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변화하지 않으면 썩게 마련이다.
돌에 이끼가 끼는 것처럼. 흑인 대통령에 대해 거부감, 트럼프의 인종주의 이미지에 휩쓸려 기존 정치세력에 힘을 몰아주기에는 미래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은 너무나 컸다.
미국이 또다른 변화와 혁신의 소용돌이에서 희망과 꿈을 간직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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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 부국장·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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