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병대원 ‘누드 사이트’ 일파만파
▶ 입대 앞두고 동영상 올라와 곤욕 치른 커닝행 “이것은 해병 가치 아니다… 예정대로 입대”
내달부터 해병 기초 군사훈련을 시작하는 사바나 커닝햄. 그녀의 누드 동영상이‘ 해병연합’ 사이트에 공유되면서 스캔들이 확산됐다. <사진 Caitlin O’Hara/NY Times>
오랫동안 해병대원이 되기를 꿈꿔온 사바나 커닝햄(19, Savannah Cunningham)은 몇 개월 전 갑자기 모르는 남자들로부터 끔찍한 온라인 메시지들을 받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남자 해병대원들이 단체로 페이스북에서 그녀의 누드 동영상을 돌려본 것이었다. 이달 초 미 해병대를 발칵 뒤집어 놓은 현역, 전역 여성 해병들의 누드사진·동영상 공유 파문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병이 되겠다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당찬 여성, 사바나 커닝햄의 스토리를 뉴욕타임스(NYT)가 소개했다.
문제의 동영상은 전에 사귄 남자친구가 올린 것이었다. 거기에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사진들과 신상정보까지 죄다 털려 온라인에 노출되었고, 영상과 사진들이 한번씩 포스트 될 때마다 커닝햄에게는 새로운 음란 코멘트가 줄을 이었다.
“정말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사생활 침해였어요. 그들은 나의 누드사진을 찾으려고 별의별 짓을 다했답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아무리 담이 센 사람이라도 입대를 포기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커닝햄은 4월 첫주에 시작하는 기초 군사훈련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누군가는 일어서야 합니다. 해병의 가치가 이런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오랫동안 해병대는 남성들의 클럽이었지만 이제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문제가 된 페이스북 누드 사이트는 3만여명의 현역 해병과 베테런이 가입해 있는 회원 전용 사이트 ‘해병연합‘(Marines United)이다. 이 사이트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해병대에서 여성대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대한 해묵은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에서는 몇 년째 이슈가 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조치하지 않고 있는 군 수뇌부에 대해 거센 비난이 이어졌다.
커스틴 질리브랜드 의원(뉴욕, 민주)은 2013년 여성해병 사이버 왕따 사건 청문회를 거론하면서 “당신들 바로 앞에 놓여있는 이 문제가 몇 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공허한 답변은 그만하라”고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로버트 B. 넬러 해병대 사령관은 자성이 실린 증언을 통해 “온라인 성희롱은 군의 근간을 약화시킬 수 있는 광범위한 문제”라고 인정하고 “이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을 처벌할 것과 18만4,000명의 해병대원들 중 1만5,000명에 달하는 여성 대원들이 좀더 편안하게 복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넬러 사령관은 “전에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고 하시겠지만 이제는 우리가 사람에 대한 태도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마뜩찮은 답변이라도 지금으로서는 그 말밖에는 할 수 없으며 그 말의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진다”고 덧붙였다.
사령관의 증언에 의하면 ‘해병연합’ 회원 3만명 중 누드 사진 폴더를 들여다본 사람은 약 500명이며 이들을 찾아내기 위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근절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처음 뉴스가 불거져 나온 후 오리지널 단체 페이지는 폐쇄됐고, 동영상과 사진 공유자들은 새로운 누드 사이트 ’MU 2.0‘로 옮겼다가 다시 폐쇄하고 ’MU 3.0‘으로 주소를 옮겨가면서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고 있다. 심지어 군 내부에서는 수사에 협조하는 고위 장교를 온라인에서 인종적 욕설과 함께 조롱하면서 그의 아내 사진들을 올리겠다고 협박하는 등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계속 익명의 포르노그래피 사이트에 포스트 하고 있는 이 그룹은 여군 수십명의 누드 사진과 함께 이들의 계급과 성명, 복무 지역 등도 함께 게시했으며 사진을 공유하면서 음담패설도 함께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은 현역·전역 여성 해병들의 누드 반라 사진은 확인된 것만 최소 24건이고 많게는 수백 내지 수천여 명의 누드사진이 공유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누드 파문을 최초로 제보한 해병 예비역 저널리스트 토머스 브레넌은 누드사진 공유에 관련된 55명의 해병 명단을 수사기관에 넘겼으나, 아직 이와 관련해 처벌 또는 징계를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 중에는 소령 급의 장교들도 있다.
조사 결과 ‘머린스 유나이티드’ 케이스는 빙산의 일각으로, 해병대는 물론 육군과 해군 등 전군에서 여군 병사들의 몰카 사진 등 성희롱이 만연돼있는 것으로 알려져 국방부 차원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군에서 복무하는 수만명의 여군들은 큰 기대를 보이지 않는다. 적발되고 기소가 이루어진다 한들 이들이 현장에서 겪는 차별과 편견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바 있는 전직 해병 대위 저스틴 엘레나는 “내가 아는 해병 여군은 거의 모두 성희롱을 겪었고, 터프하게 보이기 위해 이를 무시한다”고 전하고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는 무시하는 게 마치 용인하는 것처럼 돼 버린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녀는 여군 누드사진 공유 뉴스가 터져나오자 ‘여성해병 연합’(Female Marines United)이라는 모금 사이트를 만들었다. 여기서는 ‘해병 연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퇴역 해병의 정신건강을 후원하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사바나 커닝햄은 아직도 온라인 성희롱에 상처입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많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최고의 해병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워낙 운동 체질이었던 그녀는 고교시절부터 군 입대가 꿈이었고, 그 중에서도 최정예로 알려진 해병이 되고 싶었다. 코브라 헬리콥터의 미사일 장착 해병이 목표인 그녀는 2년 전부터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해왔다. 처음엔 한 번도 하지 못하던 턱걸이를 이제 14번 연속 거뜬하게 해낼 정도다.
그녀가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애리조나 주 외곽에서 복무했던 해병대원이었다. 그에게 짤막한 스트립쇼 동영상을 보낸 것이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었다. 자신이 “원래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활기있게 유지하고 싶어서 했던 일”이라고 설명한 커닝햄은 자신의 동영상이 해병연합을 비롯한 여러 그룹들의 공유 누드 사이트로 들어간 것을 한 남자 해병대원으로부터 듣고 알게 됐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그 사이트에 들어간 그녀는 전체 사진 콜렉션을 보게 됐고, 그 파일을 뚫고 들어가 자기가 아는 여자들을 찾아낸 다음 그녀들에게 남자 동료들과 사령관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 그룹의 행동에는 넌더리를 내면서도 커닝햄은 그것을 해병과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또 다른 해병과 데이트하고 있는 그녀는 자기가 아는 대다수의 남자 해병들은 그런 사진 공유 자체를 역겨워한다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군 입대 결심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변화의 긍정적인 예가 되어야 합니다. 용기, 진실성, 명예가 바로 그런 가치죠. 그런 삶을 살기 원합니다”
<
한국일보-The New York Ti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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