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룸과 다이닝룸은 잊어야… 연로한 부모님과 에어비앤비 손님을 위한 공간 필요
캘리포니아주 엘크그로브 남서쪽 코너 새크라멘토에서 약 15마일 떨어진 외곽에는 과거 부동산 버블이 정점이었던 시기에 지어지다가 시장이 붕괴되면서 공사가 중단되고 그대로 방치된 샤핑센터가 빈 껍데기만 남아 있다. 지역 주민들에 의해 ‘유령 몰’(Ghost Mall)로 불려온 곳이다. 유령 몰을 등지고 한 방향을 보면 농장이 보인다. 그리고 반대 방향을 돌아보면 이제 막 짓기 시작한 새로운 타운이 보인다. 먼 곳에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면 부동산 버블이 꺼지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 이전 잘 정돈된 미국의 전형적인 교외 지역 커뮤니티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많은 면에서 그런 특징들이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간 내 집 마련에 대한 아메리칸 드림은 변화했고, 아메리칸 드림 홈도 바뀌었다.
10여 년 전 드림 홈은 친구나 이웃의 감탄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지어졌다. 오늘날 드림 홈은 친척 또는 에어비앤비 손님을 위해 디자인되고 있다. 또 업무 공간용으로도 지어지고 있다. 2018년 건축업자들이 꼽은 가장 잘 팔리는 주택은 차 3대가 들어가는 거라지나 널찍한 진입로를 갖춘 집이 아니라 융통성을 갖춘 주택이다. 지금 많은 주택 시장들이 침체기를 뒤로 하고 다시 호황을 누리면서 아메리칸 드림 홈은 절대로 떠날 일이 없는 집이 되고 있다.
미 전국 최대 주택 건축업체인 ‘레나 코퍼레이션’(Lennar Corporation·이하 레나)은 이 유령몰 인근에 300채 이상의 커뮤니티를 개발 중이다. 가장 인기가 높은 모델은 집 안에 또 다른 집이 있는 컨셉의 소위 ‘넥스트 젠’(Next Gen)으로 기본적으로는 집 한쪽에 욕실과 주방이 딸렸고 호텔 룸 스타일의 문을 갖춘 1베드룸 스위트(suite)을 갖춘 모델이 인기가 좋다.
직접 안내를 받아 57만달러짜리 3베드룸 스패니시 일렉트릭 스타일의 넥스트 젠 모델을 살펴봤다. 아파트처럼 생긴 1베드룸 스윗은 키친 아일랜드만 없을 뿐 본채의 주방과 비슷한 구색을 갖췄는데 4구의 카운터탑, 최신 캐비넷, 기하학적 문양의 타일 백스플래시 등이 돋보였다.
마케팅 플라이어에는 ‘홈 오피스, 독립된 10대 자녀용 스윗 또는 되돌아온 대학생 자녀를 위한 독립 공간’이라고 소개돼 있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2층 주택도 있었는데 최근 팔린 이 주택을 계약한 바이어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이사를 올 계획이라며 안내인은 “원하는 대로 어떻게든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넓은 방, 멋진 가구들 그리고 매스터 베드룸에 붙은 워크인 클로짓과 그 안을 채운 고급 가운들까지 멋진 집에 들어가 있었고 아마도 이건 누군가의 드림 홈일 것이다. 그런데 꿈이 변하면서 유행에도 새로운 경제적 현실이 반영되고 있다.
집에 대한 융통성이 강조되면서 한때 집이 갖춰야 된다고 강조됐던 기준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날 직접 살펴본 모델 홈들은 최소한 100년 이상 동안 공식처럼 강조됐던 리빙 룸이나 다이닝 룸이 없었다. 이것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레나와 다른 주택 건축업체들에 따르면 작은 공간이라도 둘을 합쳐 더 넓은 공간으로 쓸 수 있는 모델이 인기다.
‘아메리칸 인스티튜트 오브 아키텍츠’는 2005년 이후로 매 분기마다 홈 디자인 트렌드 조사를 실시해 발표하고 있는데 이곳의 커밋 베이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집이 작아지면서 방은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며 “게임룸, 와인 셀러, 미디어 룸 등이 전용으로 쓰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목적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신축 주택은 10년 전보다 조금 커졌지만 전국 주택의 크기 중간값은 금융위기 이후 줄었다. 실제로 2009년 2,135스퀘어피트였던 것이 2015년 2,467스퀘어피트로 최대를 기록한 뒤 지난해는 2,426스퀘어피트로 축소됐다.
미국 집의 변화를 이해하려면 주택 소유율의 추이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주택 소유’가 항상 아메리칸 드림에 포함됐던 것은 아니다. 1900년 집을 가진 미국인은 전체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평균적인 집의 크기는 900스퀘어피트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택 소유는 경기 부양을 위해 일종의 애국적인 행위로 권장됐고 세제 혜택 등이 주어졌다. 이런 노력으로 1950~1960년대 주택 소유율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빌딩 붐이 일면서 1970년대에는 미국인의 60%가 집을 소유하고 주택 면적 중간값은 1,600스퀘어피트로 커졌다.
1980~1990년대를 거치면서 집 크기는 보다 커졌고 작은 부지에 화려하게 지어 올리는 맥맨션(McMansion) 같은 대단지 형태가 대거 등장했다. 레나의 존 재프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금융위기 이전 2000년대 초반에는 큰 집이 좋은 집이라는 인식이 컸다”고 말했다.
10년 전 부동산 거품이 꺼질 때 집값은 60%나 추락했다. 수백만명의 미국인이 압류로 집을 빼앗겼다. 그리고 현재 전국적인 중간 집값은 26만9,600달러로 최근 6년새 44% 올랐다.
집값 오름세가 임금 상승률을 웃돌면서 이미 집을 갖고 있지만 않다면 주택시장에 동참하기 힘들어졌다. 만약 집을 살 수 있다면 집값이나 개인 재산이 변동해도 절대로 살고 있는 곳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집을 찾는 것이 과제다.
주택 구입이 곧 재산 증식이라는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 요즘 주택 구입은 많은 걱정을 포함한 결정이다. 또 폭락할지 모를 집을 비싼 가격에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부모 세대의 좌절을 함께 경험한 20~30대는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으며 다른 대비책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레나가 넥스트 젠 컨셉을 처음 소개한 것은 금융위기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2011년이었다. 재프 COO는 “주택 시장이 침체일 때 바이어에게 모기지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제안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넥스트 젠은 이 회사의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인으로 부상해 지난해는 전년도보다 21% 늘어난 1,500채 가까운 주택이 넥스트 젠 타입으로 건축됐다.
레나의 넥스트 젠에 대한 의미 부여는 나름 설득력이 있다. 하나의 모기지로 두 채의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것으로 재프 COO는 “연로해가는 베이비부머 세대 부모님이 있고 동시에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녀도 있다”며 “자녀 세대는 직장 잡기도 힘들고 다시 엄마, 아빠와 함께 살기 위해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37세인 질 힐 씨는 34만9,000달러에 넥스트 젠 스윗을 구입해 본채에는 남편과 아이들과 살고, 별채에는 건강에 문제가 있는 아버지를 모신다. 모두가 한 지붕 아래 살거나 따로 렌트로 사는 것보다 경제적이라고 판단한 것이 이 집을 산 이유다. 또 10년전 집을 잃은 주변 지인들의 사례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힐은 “영원한 우리 집이 될 것으로 믿는다”며 “아이들이 자랐는데 독립할 준비가 안됐다면 별채로 옮겨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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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The New York Times 특약-류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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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좋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