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는 지난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방문에서 비롯됐다. 대통령의 일정에는 교황청 방문도 포함돼 있었다.
문 대통령은 10월18일 교황을 만나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의 노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면 방북을 검토하겠느냐고 물었고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검토해보겠다”는 취지로 답하면서 ‘어베일러블(availabl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시간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으니 검토해볼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교황청이 실제로 교황의 방북을 검토하고 있는지 또는 북한이 초청장을 보낼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된 것이 없다.
교황은 바티칸 지도자다. 바티칸은 인구라고 해봐야 성직자와 수도자 900여명이 전부인 0.44㎢의 손바닥만 한 도시국가로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 있다.
그럼에도 교황의 행보가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가 한국의 400만명을 포함한 세계의 13억 가톨릭 신자들을 이끄는 수장으로 국경을 초월하는 큰 상징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교황이 종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북한을 방문한다면 당연히 빅뉴스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의 방북이 ‘설’로 끝난 것인지를 궁금해 하면서도 방북이 실현된다면 진실로 축복받은 방북이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교황의 방북이 유의미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취해야 할 조치들이 있다. 첫째, 교황이 해외 나들이를 하는 목적은 선교이기 때문에 북한도 선교가 가능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의 자유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오늘날 모든 민주국가는 반사회적·반윤리적·위법적이지 않은 범위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세계에는 아직도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고 북한도 그중 하나다.
북한에도 1988년에 세운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이 있지만 이들은 북한의 유일한 개신교회와 성당이며 이곳을 다녀온 대부분의 외국인은 대외선전용 시설일 뿐이라고 믿는다. 북한은 유엔 회원국으로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을 준수할 의무가 있고 1981년 9월 북한 스스로 인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도 종교의 자유가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교황을 초청하기에 앞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둘째, 교황의 방문을 추진하기에 앞서 북한은 6·25전쟁을 전후해 북한에서 자행된 천주교 박해에 대해서도 입장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천주교에 관한 한 한반도는 순교의 땅이다.
18~19세기 왕정체제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수천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형과 능지처참을 당했고 20세기에도 북한에서 같은 일이 반복됐다.
북한이 진정 교황이 방북해 ‘치유와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기 원한다면 이런 과거사에 대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교황은 평화와 치유의 사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해서도 “한민족이 60년 이상 겪고 있는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형제적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교황의 방북이 이뤄질지 또는 북한이 초대장을 보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남북한 중 어떤 쪽이든 교황의 방북을 정치·외교적으로 활용할 궁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교황이 북한에 간다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간절한 평화의 기도를 바치기 위해 가는 것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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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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