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사우디아라비아 등 상당수의 중동국가가 미국산 바비(barbie) 인형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했다. 지나친 노출이 이슬람의 미덕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흑백 줄무늬 수영복 차림에 여성성을 강조한 초기 바비 인형은 이슬람권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법하다. 실제로 175㎝의 어른을 6분의1로 축소한 바비 인형은 잘록한 허리 등 비현실적인 몸매를 가졌다.
하지만 예쁘고 성공적인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보고 싶었던 소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959년 3월9일 뉴욕 세계장난감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이자 바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해에만 30만개가 판매됐다고 한다. 제조사인 마텔은 날씬한 몸매를 원하는 소녀들의 심리를 노골적으로 이용했다. 1963년 인형과 함께 ‘살 빼는 방법’이라는 책을 끼워 파는 것도 모자라 ‘먹지 마라!’라는 글귀로 충고까지 했을 정도다.
이 상술에 현혹된 여성들이 다이어트와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바비 신드롬’마저 빚어졌다. 이렇게 부작용이 심했으니 바비 인형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고 여성의 성 역할을 고정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지 싶다.
바비 인형은 백인우월주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1967년과 이듬해 잇따라 흑인 인형을 만들었는데 백인 외모는 그대로 유지한 채 피부 색깔만 바꿔 흑인들의 반발을 샀다. 1997년에도 속은 하얗고 겉은 까만 오레오 쿠키에 빗댄 ‘오레오 바비’를 공개해 흑인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까. 바비 인형이 최근 몇 년 새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2015년에 피부색·눈동자색을 달리하는 시리즈가 나오더니 2016년에는 키가 작거나 통통한 체형도 등장했다. 올해 3월에는 운동선수·조종사·수학자 등 열여섯 가지의 다양한 직업군도 선보였다.
더 나아가 소녀들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드림갭(Dream Gap)’ 운동을 마텔사가 시작한다는 소식이다. 소녀들이 잠재력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이유에 관해 연구하는 프로그램에 재정지원을 하고 올해 말부터 매년 최소 10명씩의 롤 모델 여성을 선정해 공개할 모양이다.
이런 움직임에는 ‘미투’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사회적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영향이 큰 듯하다. 인형보다 비디오게임에 몰두하는 여자아이들이 늘어 마텔의 실적이 부진한 탓도 있는 것 같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려는 바비 인형의 몸부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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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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