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한창이던 지난 1976년 소련이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SS-20을 동유럽에 배치하자 서유럽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 서유럽에는 사거리 5,000㎞에 핵탄두 3개를 탑재할 수 있는 SS-20에 대응할 만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헬무트 슈미트 서독 총리는 소련과 협상을 벌였지만 소득이 없었다.
이에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나토)도 ‘공포의 균형’ 카드로 맞섰다. 나토는 1983년 11월22일 서독에 퍼싱Ⅱ 미사일을 배치했다.
나토도 7분 만에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는 핵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자 소련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등장한 뒤 미국과 진지한 협상에 나섰다. 마침내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1987년 12월8일 워싱턴에서 ‘중거리핵전력조약(Intermediate Range Nuclear Forces Treaty·INF)’에 서명했다.
이를 통해 양국은 사정거리 500~5,500㎞의 미사일 2,692기를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폐기했다. 이것이 핵전력과 관련된 최초의 군축조약이다. 당초 유효 기간은 1991년 6월1일까지였지만 양국은 이후에도 이를 지켜왔다.
사정이 달라진 것은 2014년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개발하고 있는 신형 크루즈 미사일(9M729)이 협정에 위반된다며 항의했다. 숱한 경고에도 러시아가 2017년 이를 실전 배치하자 미국은 협정을 파기하겠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INF 탈퇴의사를 밝혔고 12월4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60일 내에 협정을 중단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미러 양국은 올 2월2일까지 베이징에서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결국 폼페이오 장관은 “조약 이행을 중단하고 6개월 뒤에는 정식 탈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INF에서 탈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의 협정 위반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협정의 구애를 받지 않는 중국이 중거리미사일 능력을 키우자 이럴 바에는 협정을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벌어질 군비경쟁이다. 만일 동북아시아에서 공격용 중거리미사일 배치 이슈가 확대되면 사드 때보다 더 큰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북핵 문제로 어수선한 이때에 INF 상황까지 꼬이면 동북아 긴장이 더 고조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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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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