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이 한여름 폭염으로 달궈진 열기를 식히자마자 지독한 독감의 열기로 쓰러져 지난 며칠을 그냥 멍하니 보낸 것 같다. 내 몸이 천근이 만근이 상태이니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처리하고 그저 부실한 면역 체계 탓을 하며 대부분을 누워서 지낸 거 같다.
어려서부터 가끔가다 이렇게 고열로 쓰러져 몇 날 며칠을 아프고 나면 뭔가 정화되는 느낌이 있었다. 영어로 하면 reset 된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며칠 동안 거의 모든 일이 정지된 상태에서 고열과 고통의 사슬에 묶여 있는 느낌으로 시달리다가 자연 치유된 후의 그 가뿐한 기분은 정말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무엇보다도 축축한 안개 속에서 누군가 바늘로 꼭꼭 찌르고 있는 것 같은 혼돈의 머리 상태가 소낙비 내린 후 맑게 개인 하늘처럼 청명해지면 정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이렇게 본다면 감기나 간단한 병은 면역 체계가 우리에게 주는 작은 휴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무리하고 혹사된 육체를 자연적으로 치유할 수 있게 버퍼링 체계를 구축해주는 반어적이긴 하지만 일종의 호의의 신호인 것이다.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이 많고 중요한 일들도 많다 하지만 육체가 우리에게 보내는 이런 신호들을 무시하지 말고 쉴 때는 확실하게 쉬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더 큰 병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사실 내키지는 않지만 흔쾌히 지불하는 것도 나쁘지 않는 것 같다.
이번 주말은 한국의 명절 한가위 주말이다.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 우리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모여 다정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며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나누면 좋을 것 같다. 예전과 같이 한자리에 모여서 송편을 빚고 윷놀이와 같은 게임은 하지 못할지언정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맛있는 식사를 같이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소소하고 평범한 행복에 감사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독감으로 인해 좀 쇠약해진 몸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화된 몸과 마음으로 한가위를 맞이하고 뭔가 새로운 도약까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분좋은 휴가였다고 할 수 있다.
<이숙진(보험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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