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동생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친구의 통장에 5천만 달러(한화 약 5백억원)가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지 않았으나 이미 돈의 냄새를 맡고 있던 주변인들이 마치 자기 돈인 양 과시를 해댔다. 부유한 부모를 둔 덕분에 나보다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이 있다니 걷잡을 수 없는 부러움이 밀려왔다.
이렇게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 나보다 훨씬 유리한 상황과 환경, 외부의 지원으로 마음을 편하게 먹고 사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괜히 어깨가 축 처진다. “부러우면 지는 거야”라고 속으로 되뇌이지만 이미 ‘내가 졌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또 내 주위에는 과시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부류들이 많다. 아무리 현실의 삶에 만족하며 산다고 해도 이런 과시족들을 만나면 그날 하루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마음이 고달프다.
하지만 반복되는 박탈감 속에서 하나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부러우면 지는 것’에서 지도록 만드는 원흉은 부러움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각기 다른 인생을 사는데 거기에 이기고 지는 것이 어디 있는가? 처음부터 누군가의 어떠함에 비교하며 경쟁구도로 진입하려는 내 마음이 문제였다. 또 다른 수면 아래에 있는 사실, 곧 내가 가진 것을 잊고 있기 때문에 지는 것이다. 그리고 평소의 나다움을 한탄하고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는 일상에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성별, 학력 그리고 재력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만만한 삶은 없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돈으로만 버텨내기에 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일용할 금전이 있음에 감사하고 나의 몸과 마음을 잘 가동시킬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려 한다. 타인에 대한 부러움으로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거나 어깨가 축 처지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내 자신에게 눈길을 돌리려 한다. 많은 경우 우리의 부러움을 사는 그 사람도 그의 삶의 자리에서 나름의 한탄과 문제가 있다. 거액의 잔고를 가지고도 지금 이 순간을 잿빛의 암울함으로 사는 부자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돈을 떠나서 자족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순간이 부러움의 상대보다 더 많다면 그게 오히려 이기는 거다.
<유명현(동시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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