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모질지 못하는 측은지심이 있어 본성이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이나 인간의 본성은 악하나 인위(도덕적인 가르침) 의 덕분으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순자의 성악설은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풍우란’ 의 ‘동양철학사’에는 순자((298?-238?)의 성악설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이 있다. 인간의 본성은 날 때부터 이익을 좋아 하는데 이 본성을 쫓아 살기 때문에 서로 다투고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빠진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자유경쟁 시대이다. 능력 있는자는 앞서가고 모자란 자들은 처질수 밖에 없다. 승리한 자들은 실패한 자들을 돌보거나 측은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린다. 같이 살아가자가 아니고 나 먼저 살아야겠다고 하니 도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빚더미에 깔려 잠을 못 이루는 이들이 생긴다.
‘순자’는 또 인간은 날 때부터 질투와 증오심이 있어 이 본성을 쫓기 때문에 남을 해치고 비방 하여 신실한 마음이 없어지고 도덕성을 잃어버린다고 했다. 거짓말, 사기, 모함 등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일이다. 2300년 전 순자의 염려는 지금도 계속되는 걸까.
사람은 누구나 감각적인 욕망이 있어 미색을 좋아하고 정욕을 쫓아 살게 되고 질서가 무너지고 사회기강이 문란해 진다고 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성에 대한 폭력과 문란은 역사 속에서 흔하게 보았다. 우리는 얼마 전 ‘미투’운동이라는 성폭력과 성추행 고발로 충격을 받았다.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이들과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들도 포함되어 있어 더 놀라웠다.
순자는 악하게 태어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을 내놓았다. 스승과 법도에 의한 교화와 예절과 의리에 바탕한 교도를 실시해야 비로소 사양지심이 생기고 법식과 사리에 부합하고 태평성대가 온다고 했다. 말씀에는 다소 구시대적 훈계가 짙지만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깨우침 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둡고 더 혼란해 지는 것이 인간 본성이 악한 탓이라면 종교만이라도 세상의 빛과 소금의 구실을 잃지 않기를 조용히 기도 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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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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