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봉쇄령으로 집 안에만 갇혀 살다 보니, 바깥 세상의 일들이 거짓말 같다. 재택 근무를 하게 된 남편은 점점 게을러져서 매일 늦잠을 자고, 집 밥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어 토실해진 얼굴로 요즘 좀 행복하다는 말을 한다. 심지어 봉쇄 생활이 체질에 맞는 것 같다며 뿌듯해 한다.
뉴스를 보면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아프다는데, 그렇게 많이 죽었다는데도 우리에겐 현실감이 없다. 우린 도심에 살지만 창 밖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고, 비슷비슷한 매일이 반복된다. 너무 지루해서 평소에 안 하던 짓까지 하고 있는데, 발코니를 마주하고 있는 앞 건물의 이웃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몇 사람에겐 별명도 붙여 줬다. 하루종일 어린아이 둘을 돌보며 끝없는 가사 노동에 바쁜 14층 여인은 ‘슈퍼맘’이다. 4월 중순인데도 끈질기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워 두고 밤마다 화려한 트리 조명까지 뽐내는 17층 중년 부부는 ‘북극 주민’이고, 항상 트렁크 팬티와 티셔츠만 입고 생활하는 15층 청년은 하의 실종이라는 의미에서 ‘곰돌이 푸’라고 부른다.
우린 매일 틈날 때마다 모두의 안녕을 체크하는데, 혼자라서 괜히 슬퍼 보이는 ‘곰돌이 푸’를 특히 신경 쓰고 있다. 그는 우리 부부의 애틋한 시선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겠으나, 이쪽은 나름대로 정성이다. ‘푸’가 키친 카운터에 앉아 뭔가를 먹고 있으면 과자라도 꺼내 와 함께 먹고, 홀로 우두커니 티비를 보면 우리도 티비를 틀어 함께 본다. ‘푸’는 맞은편 건물의 인간 두 명과 개 두 마리가 자신과 생활 패턴을 공유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알았다면 당장 바지를 챙겨 입었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심심할 때 ‘푸’ 걱정을 했다. 그가 아프기라도 하면 911에 전화를 걸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두고 영양가 없는 토론도 했다.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아진 후에도 우린 지금처럼 ‘푸’를 생각할까? 아니, 우리 모두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티비 속 세계는 돌이킬 수 없는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것만 같다. 모두 안녕 하기를, 낯 모르는 지구의 모든 이웃들이 무사하기를. 낯선 세계에 살아보니 이상하고 착한 기도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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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과 철학,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이현주씨는 북 에디터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던 중 도미했다. 현재는 취미를 밥벌이로 승화시키기 위해 WEST의 와인 전문가 과정을 수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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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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