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위스칸신 대학의 화공과 대학원에 입학한 나는 박사과정을 마치고 1984년부터 메릴랜드 대학 조교수로 근무하게 되었다. 1986년 미국립과학재단에서 수여하는 젊은 과학자대통령상(Presidential Young Investigator Award)을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는데 이 대통령상은 당시 50만달러의 연구비를 상으로 주는 것으로 지금으로 치면 대략 250만달러 정도의 가치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상에는 조건이 있었던 바 연구비의 37.5%를 미국의 산업체로부터 산학연구과제의 형식으로 받아와야 하는 것이었다. 인터넷도 없고 이메일도 없던 그 당시 넓고 넓은 미국땅에, 그것도 쟁쟁한 미국 화학회사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사람도 없었던 나는 그저 막막하였다. 그러나 많은 화학회사들에 돌격정신으로 무조건 편지를 내어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문의하였고 다행히 그 중 몇 개 회사가 답장을 보내어 이들 회사를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1986년 7월 미시간주 미드랜드에 있는 다우케미칼(Dow Chemical) 연구소를 1박 2일로 방문하고 피곤한 몸으로 미드랜드 공항 대합실에서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골 공항이라 게이트도 3개밖에 없는 작은 공항이었다.
그때 누가 내 어깨를 툭툭치기에 올려다보니 렌슬리어 대학의 브루스 나우만 교수였다. 중합반응공학 분야에서 당시 아주 유명한 교수였다. 웬일로 여기에 있느냐고 하기에 여차저차해서 다우 케미칼을 방문하고 가는 길이라고 대답하였는데 알고 보니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한동안 대화를 하던중 그가 일어나면서 자기는 비즈니스 클래스 티켓이라 먼저 탄다면서 나의 어깨를 다시 툭툭치면서 ‘너도 언젠가는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할 날이 올거야’ 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게이트로 향했다. 한참 있다가 다른 많은 승객들과 이코노미 클래스로 탑승하는 나 자신이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졌고 그 교수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나는 정교수로 승진하였고 1995년 6월 벨기에의 세계적인 화학회사인 솔베이(Solvay)사와 연구하게 되어 그 회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들이 보내준 비행기표로 브뤼셀 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이었다. 탑승 후 넓고 안락한 좌석에 앉아 여승무원이 상냥하게 웃으며 갖다준 와인잔을 들고 창밖을 내다보니 9년전 미드랜드 공항 대합실에서 만났던 브루스 나우만 교수가 생각났다. 나는 혼자 미소 지으며 속으로 말했다. ‘Bruce, as you said, I am flying business class today(브루스 나우만 교수님, 이제 오늘 나도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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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메릴랜드대학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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