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성당 청년회 후배가 나에게 생명보험을 팔러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얻은 직업이 보험회사였나 보다. 혼자 사는 신부인 나에게까지 생명보험을 팔러 왔나 해서 하나 사 주었다.
나라도 도와주고 하나 팔아 주어야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매달 꼬박꼬박 돈이 들어가니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죽으면 이 돈을 어떻게 하지? 누구에게 물려주지? 마땅히 줄 사람도 없는데? 보험신청 때 누가 돈을 받게 되냐는 질문에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그래도 가장 가까운 내 동생 이름을 적어놓았다. 물론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동생을 배려하는 내가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그런데 얼마 전 동생이 별일도 아닌 일에 덤벼들고 나에게 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동생이름을 확 빼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게 어떨 때는 마음에 들다가도 또 좀 있다보면 마음에 안 드니 나는 보험수혜자에 동생 이름을 뺐다 넣었다 반복을 한다.
독일에 직업 없기, 집 없기, 와이프 없기 3무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고 신문에 보도가 된 적이 있다. 튀빙겐 대학 벤치에서 잠을 자고 대학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대학식당에서 밥을 얻어먹는다고 해서 그가 기인인지 폐인인지 사람들의 평가가 왔다리 갔다리 한다. 그래도 신문에까지 나온 것은 보니 단순한 홈리스나 폐인은 아닌가보다.
이 사람이 실천하는 3무란 한마디로 무어라고 할 수 있을까? 인생을 완전히 포기한 걸까? 거지되기를 작정한 걸까? 아니면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고 모든 것이 상업화 대량 소비가 일상이 된 오늘 날 모든 가치를 박차고 살아가는 초월인의 모습일까, 뭐라고 해야 할까?남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더 높이 올라가갈려고 평생을 아등바등 살아가는데 이렇게 안 가지려고 바등 대는 사람도 있다니 이 세상이 재미있는 것이다.
글쎄 나도 사실 집이 없다. 성당이 집이니 이게 내 집인가? 언제든지 명령만 있으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와이프도 없다. 독신을 하기로 약속했으니 있으면 큰 일 난다. 그리고 직업도 없다. 사제직이 소명이지 뭐 직업이냐?
그러나 세상 어딜 가나 내 직분을 수행하며 잘 얻어먹고 내 집처럼 편히 살고 잘 받아쓰기에 나도 3무를 실천하는 사람인지 아닌가 긴가 민가 하다.
그런데 우리 주님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소구유도 빌려 쓰고 돌아가실 때 남의 무덤도 빌려 쓰셨으니 이 분도 3무를 철저히 실천하신 분이시다.
와이프도 없었고 있던 직업도 버리시고 자기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셨다. 하늘의 높고 화려한 영광의 주님이 가장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셔서 평생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다가 잡혀서 심하게 두들겨 맞으시고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으셨으니 참 낮은 모습 그 자체이다.
그것이 케노시스(KENOSIS)가 아닐까? 자기를 비움이 아닐까? 진짜 3무를 실천한 기인은 바로 예수님이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 꼬라지를 생각해본다.
<
조민현 팰팍 성 미카엘 성당 주임신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