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캠핑카를 타고 7살, 6개월 된 아이와 함께 캐년 여행을 다녀왔다. 미 서부 대자연은 참 경탄스러웠다. 사막을 걷다보면 갑자기 비현실적인 경관이 튀어나왔다.
그랜드캐년은 엄청난 규모의 가파른 절벽들로 이어져있었다. 아찔한 벼랑을 내려다보니 장엄한 교향곡처럼 죽음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앤틸롭 캐년에서는 물의 흐름이 만든 흔적을 봤다. 예술작품 속을 걷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현실감각이 무뎌졌다.
마지막으로 협곡 깊은 곳, 자이언캐년으로 갔다. 절벽 위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면, 여기서는 절벽 아래 꿈틀대는 생명감을 느꼈다. 흐르는 계곡과 피어나는 꽃을 보며, 절벽 아래의 삶을 상상했다. 나는 가파른 절벽 끝에 서 있는 듯 아등바등 살고 있지만, 절벽 아래에서도 삶은 이어지는 게 아닐까.
오히려 절벽 아래가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동안 못 해봤다. 절벽에 서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힘이 오늘 하루를 견디게 해줄지 모른다.
특히 이번 여행은 캠핑카로 다녀와 더 특별했다. 호텔에서 쉬고 외식하는 편안함은 없었다. 2평 남짓한 공간에서 4명이 부대끼며 생활했다.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축약판을 경험했다. 뒤바뀌는 배경을 두고 끝없이 이어진 길을 홀로 운전하는 남편, 조수석에 앉아 두 아이와 남편을 동시에 돌보며 분주한 나. 좁은 공간에 함께 있으니 안 보이던 상대의 고단함이 보였다. 남편은 종종대는 내 발걸음을, 나는 운전하는 남편의 굽어진 등을 봤다.
길이 험해 차가 덜컹거릴 때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눈앞의 길에만 집중하며 손잡이만 꼭 잡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내 손을 보니, 두 아이를 키우며 매일을 비장하게 보내는 나 자신이 보였다. 평탄한 길로 접어들었을 때야 창밖 절경을 즐길 수 있었다. 가끔 여행을 하며 삶의 쉼표를 만들어야 주변을 볼 여유가 생기겠구나 싶었다.
집에 돌아와 손톱을 깎았다. 매일 손톱은 자라고 깎이지만 여전히 새 손톱이 손끝을 지켜준다. 보드라워진 손으로 남편의 고단한 등을 안아주며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이번 여행을 오래 기억해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라난 손톱만큼 우리 가족의 시야를 확장하고 새로운 감각을 일깨웠다면 그걸로 충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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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연 /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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