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내부의 두 가지 위험이 있는데 그것은 ‘친구’와 ‘적’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닮은 이들과는 쉽게 어울려 친구가 된다. 하지만 친구 관계가 건강하지 못할 때 공동체는 쉽게 병든다.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오.’ ‘당신도 그래요.’ ‘그러니까 우린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오. 영리하고 총명하거든요. 우리끼리 똘똘 뭉쳐 공동체를 지배합시다.’ 잘못된 친구 관계는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적’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두려움은 인간관계를 퇴행시키고 서로 반감을 갖게 만든다. 공동체 안에 두려움의 감정을 일으키는 적대적 인물이 존재할 때 그 공동체는 더 이상 건강하지 못하다. 무조건적 공감을 요구하는 친구 관계나 두려움을 이용하여 집단이기주의를 부추기는 분파주의는 둘 다 공동체를 허무는 위험요인이다.” (프리초프 카프라의 ‘the Web of Life’ 중에서)
스타플레이어 선수간의 불화, 감독과 선수간 불신, 체육 지도자들의 명예 다툼은 한국 체육공동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이다. 아시안컵 축구경기의 4강전에서 보여준 한국선수의 무력한 경기는 축구공동체의 퇴행을 포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준결승전 경기가 있기 바로 전날, 선수들끼리 서로 고함을 지르며 몸싸움을 벌였다. 중요한 4강 경기를 앞두고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했는데 선수들은 단합하지 못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선수들의 불화를 수수방관했다.
공동체는 ‘나를 위한 공동체’에서 ‘우리를 위한 공동체’로 전환될 때에만 비로소 최상의 공동체로 빛을 발한다. 한국대표축구 공동체는 그렇지 못했다. 공동체의 진정한 힘은 ‘우리’라고 하는 일치정신과 상호 의존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기술이 우월한 몇몇 스타플레이어만이 주인공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공동체는 이미 퇴행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혹자는 그와는 정반대가 되어야 강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만 구성된 선수 공동체는 정신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다.
바울은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한 고린도교회를 향해 충고했다. “몸의 지체 중에 더 약하게 보이는 것일수록 오히려 훨씬 더 요긴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의 몸을 짜 맞추면서 모자라고 연약한 지체일수록 그에게 명예를 더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공동체 안에 분열이 없게 하셨습니다.”
21세기 한국사회는 지중해 변방의 작은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살려 세계 인류를 품는 기독교 공동체로 구축한 바울에게서 혁신의 공동체론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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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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