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전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아더가 태어난 곳이 지금은 변두리나 다름없는 서남부 땅끝 마을 콘월의 틴타젤이란 사실이다.
지금은 별 볼 일 없지만 고대에 이곳은 중요한 곳이었다. 유럽 최대의 주석 광산이 여기 있었기 때문이다. 청동기 시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를 만드는 재료인 청동이었고 청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리와 함께 주석이 필요했다. 구리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주석은 귀했다. 주석 광산이 있던 콘월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의 하나였다. 서양 최초의 역사가인 헤로도투스는 영국을 ‘주석의 섬’이라 불렀다. 이곳이 아더왕 전설의 무대가 된 것은 이유가 있다.
귀중한 자원이 있는 영국을 본격적으로 탐험한 첫번째 인물은 마르세이유 출신 그리스인 피티아스였다. 기원전 325년 그는 처음으로 영국을 한바퀴 돌고 탐험한 기록을 남겼는데 여기서 영국을 ‘프리타니케’라고 불렀다. 당시 영국에 살던 켈트족 말로 ‘색칠했다’는 뜻인데 원주민들이 파란색으로 몸을 치장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을 뜻하는 이름인 ‘브리튼’은 여기서 나왔다.
영국을 뜻하는 또 하나의 이름인 ‘잉글랜드’는 이보다 훨씬 후 등장했다. 고대 영국 역사가인 길다스와 비드 등에 따르면 5세기초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주둔했던 로마군이 떠나면서 영국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보티겐이라는 이름의 족장이 잘 싸우기로 소문난 북독일의 색슨과 앵글족을 용병으로 쓰기로 하고 이들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들이 땅을 차지한다. 이중 앵글족이 주도적인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영국은 ‘앵글족의 땅’, 다시 말해 ‘잉글랜드’가 되고 사용하는 언어도 영어로 바뀌게 된 것이다.
지금도 북독일 발트해 연안에 안겔른이란 곳이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앵글족이 원래 살던 곳이 바로 여기기 때문이다. 안겔른은 ‘휘었다’는 뜻으로 이곳이 바다와 호수, 강과 인접해 있어 이곳 주민들이 휜 낚시 바늘로 물고기를 잡는데 뛰어났던 것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영어권에서는 낚시꾼을 ‘angler’라고 부른다. 수학에서 각을 뜻하는 ‘angle’, 인간의 신체에서 휘어 있는 발목 ‘ankle’ 모두 어원이 같다.
앵글로 색슨이 지배하던 영국은 9세기말 중대한 위기를 맞는다. 덴마크에서 온 바이킹의 습격으로 이들이 세운 4개 나라중 3개가 무너지고 웨섹스만 겨우 살아남는다. 영국에서 유일하게 대자가 붙은 알프레드 대왕이 878년 에딩턴 전투에서 승리해 이들을 몰아내지 않았더라면 지금 영국은 덴마크 땅이 되었을 수도 있다.
위기는 또 찾아왔다. 1066년 이번에는 한 때 바이킹이었다 프랑스 노르망디에 정착해 노르만족이 된 집단이 영국 해협을 건너 침공해 온 것이다.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앵글로 색슨의 왕 해럴드 갓윈슨이 노르만의 윌리엄에게 참패하고 목숨을 잃는 바람에 영국은 프랑스말을 쓰는 노르만의 차지가 됐다. 지금도 프랑스어가 고급스런 느낌을 주는 것은 이때 상류 계층의 문화와 언어가 프랑스권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언어가 한때 켈트어였다 영어로 바뀐 것처럼 이번에는 프랑스어로 변할 것처럼 보였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앵글로 색슨족의 이주와 노르만족 침공의 결정적 차이는 앵글로 색슨은 주로 가족이 단체로 옮겨온 반면 노르만족은 남자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노르만족은 앵글로 색슨 여자에게서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들은 어머니 말을 따라하게 된 것이다.
자기가 태어나 배운 말을 ‘모국어’(mother tongue)라고 부르는데서도 알 수 있듯이 어머니 혓바닥이 무슨 말을 하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language’라는 말 자체가 ‘혓바닥’(langue)이란 단어에서 왔다.
영어는 오랜 로마의 통치와 프랑스 말을 쓰는 노르만족의 침공을 받으면서 이들의 언어를 많이 흡수했다. 영어는 원래 독일어의 일종으로 기본 문법과 기초적 단어는 이들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라틴어 계통이 28%, 프랑스 계통이 28%일 정도로 외래어가 많이 섞여 있다. 거기다 18세기 이후 영국이 세계로 세력을 뻗치면서 세계 각국의 언어를 받아들였다. 이런 포용성의 결과 지금 영어 단어 수는 40만에서 60만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는 순혈성을 강조하는 프랑스어 단어가 15만에 불과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현재 15억명이 사용하는 영어는 사실상 유일한 세계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3일은 유엔이 정한 ‘영어의 날’이자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기도 하다. 유엔과 유네스코가 이 날을 기념하게 된 것은 이것이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생일이자 제삿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또 공교롭게 그와 쌍벽을 이루는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기일이기도 하다. 이 날을 맞아 영어의 기원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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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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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speare와 Cervantes가 달력으로는 같은날에 돌아가셨지만 그당시 영국은 오래된 Julian력을 쓰고있었고 스페인은 바뀐 Gregorian 력을 썼기 때문에 실절적으로는 열흘의 차이가 났다고합니다.
알프레드 대왕은 정말 임진왜란시 이순신장군만큼 조국을 지킨 위대한 인물이다. 영국의 왕들중 처음으로 무 보다는 문을 중시 여겨 독서를 많이 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말씀하신대로 정말 바이킹에 멸망당해 지금은 바이킹의 나라가 되었을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