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러지? 두드러기가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벌겋게 피었다 지기를 반복한다. 연고를 바르고 알약을 먹다가 2주째 접어들어서는 열꽃이 맘껏 장난질하도록 내버려둔다. 지칠 때까지 해보라는 식이다. 자고 나면 가라앉을 거야, 다 좋아질 거야, 차라리 마음을 달랜다.
병원에 가지 않고 버텨보는 이유는 여러 해 전 피부 알레르기로 장기간 고생한 친지의 경험담 때문이다. 정수리 부위까지 열꽃이 올라오고 각질이 벗겨지는 등의 증상으로 견디다 못해 피부과에 갔다. 의사가 말하길, 정신적인 문제이니 딱히 치료해 줄 게 없다고 하여 스테로이드 연고만 받아왔다는 것이다. 마음이 피부를 다스린다는 건가? 황당한 진단이라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도 같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The Only Girl in the Orchestra)>는 ‘오린 오브라이언’이라는 훌륭한 더블베이스 연주자를 조명한다. 올해 90세를 맞은 그녀의 예술 인생을 35분짜리 영상에 담았다. 좋은 연주자의 길을 가기 위해 정한 뜻을 올곧게 지키며 산 사람의 품격과 좋은 어른의 향기가 흘렀다. 조용한 당당함이랄까. 간지러움과 따가움을 잊고 빠져들었다.
1966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최초로 입단한 여성 더블베이시스트라는 수식어를 비롯해 그녀의 이름 뒤에는 별빛 같은 이력들이 가득하다. 그 이력들에 녹아 있는 그녀의 시간과 성실함에 감탄하며 여러 번 되돌려 보기를 했다. 특히 내 마음에 꽂힌 것은 그녀의 젊은 시절 줄리어드에서의 일화다. 그녀가 더블베이스 제자들에게 경험담을 들려주며 당부하는 장면이다.
“지금처럼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하고 있을 때였어요. 나는 음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낮은 파 음(low-F)을 강한 비브라토로 켜고 있었죠. 그런데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멈추게 하고 말하길, ‘당신 파트가 멜로디라고 생각합니까? 아니에요.’ ‘보조 역할입니다. 비브라토는 안됩니다.’ 나는 망신스러웠지만 중요한 것을 배웠어요. 음이 튀어나오지 않게 할 것. 여러분은 지원하는 역할입니다. 여러분이 안정적이지 않으면 다같이 무너질 수도 있는 오케스트라 전체를 받쳐주는 바닥 같은 존재. 그러니 자부심을 느낄 만하죠. 하지만 보조예요.”
지휘자의 충고 한마디가 그녀에게 깨달음을 주었고 그때 마음먹은 것을 실천해 나갔다. 평생 지켜온 단초가 되었다. 2인자가 되기를 두려워 말기, 더블 베이스는 오케스트라의 조연 담당임을 명심하기, 내가 하는 일 그 자체를 사랑하기, 화려한 조명이나 찬사에 휘둘리지 않기, 혼자가 아닌 함께 더 좋은 음악 만들기… 그 마음이 음악과 삶 속에 온전히 녹아 들어 그런지 그녀 자체가 아름다운 하모니의 사람처럼 느껴진다. 꽉 찬 음을 내면서도 도드라지지 않도록 생을 연주하는 사람.
다큐의 마지막. 아홉 대의 더블베이스가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제자들과 연주하는 그녀의 얼굴이 충만함으로 빛난다. 한 사람의 일생을 받쳐 준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삭이고 묵히고 벼린 예술가의 시간이 선율을 타고 유영한다. 마음에 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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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라 수필가 미주문협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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