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적이탈 현황 파악 안돼
▶ “근무 기강 해이” 지적
▶ ‘민원 서비스 개선’ 위해
▶ 기본부터 바로 세워야
국적이탈 신고가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한인사회에선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다.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모순과 폐해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들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국 국적을 자동으로 부여받은 뒤, 기한 내에 국적을 이탈하지 못하면 병역의무와 각종 법적 제약을 떠안게 되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LA 총영사관에 현황을 요청했다. 최근 몇 년간 국적이탈 신고가 몇 건 접수됐는지, 분기별 혹은 연간 통계를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다.
“그런 통계를 따로 작성하지 않아 다음 주에나 알려줄 수 있다.”(국적담당 영사) “국적 업무를 비롯한 전체 민원 실적에 대한 자료가 없다.”(민원담당 영사) 심지어 “지난 3월 발생한 대표전화 회선 장애로 담당 영사의 사무실 직통 전화번호가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언론담당 영사)는 답변도 돌아왔다.
뉴욕 총영사관의 사례는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뉴욕은 지난 8일 상반기 민원처리 현황을 상세히 공개하며, 2021년 상반기 247건이던 국적이탈 신고가 2025년 같은 기간에는 352건으로 40% 이상 증가했다는 구체적인 통계를 발표했다. 뉴욕 총영사관은 매년 1월이면 전년도 민원 실적을 국적이탈, 국적상실, 가족관계 등록 등 세부 항목별로 체계적으로 집계·공개한다. 연간 8만 건 이상의 민원을 처리하면서도 통계 관리에 차질이 없다.
그런데 연간 민원 접수 건수가 11만 건을 넘는 LA 총영사관은 2021년도 통계 이후 민원 실적을 단 한 차례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수년간 민원 처리 과정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게 됐다.
이쯤 되면 단순히 통계를 미처 정리하지 못했다고 넘길 일이 아니다. 기본적인 업무 관리조차 방치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교롭게도 LA 총영사관의 이 같은 무기력은 내부 기강 해이가 심해졌다는 최근 평가와도 맞닿아 있다. 김영완 LA 총영사는 2022년 3월 부임해 이미 3년 임기를 훌쩍 넘겼다. 한국 외교부의 주요 공관장 인사가 지연되며 영사들의 근무 기강도 해이해졌다는 비판이 공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한때 LA 총영사관은 ‘뺑뺑이 총영사관’이라는 오명을 썼다. 한인 언론이 취재차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전화를 걸면 담당자끼리 업무를 미루며 전화를 돌리기 일쑤였다. 지금은 영사들이 “담당자가 아니라 모른다”는 말을 반복하던 모습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이번처럼 민원 통계를 확인하는 기본 절차조차 혼선에 빠진 현실은 실망스럽다.
더 답답한 것은 ‘민원 서비스 개선’이라는 공관의 구호다. 최근 몇 년간 LA 총영사관은 언론과 한인사회에 “찾아오는 민원인의 편의를 최대화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최소한의 통계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무엇을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것인가. 실태조차 모르는 개선은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 총영사관 대표전화 회선 장애 복구가 4개월째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지난 3월 한국의 감사원이 발표한 재외공관 운영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전 세계 180개 재외공관에서 접수된 민원이 128만6,827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LA 총영사관의 실적도 분명히 포함돼 있다. 감사원과 외교부에 제출할 통계는 갖고 있으면서, 언론과 한인사회에는 “자료가 없다”고 하는 이중적 태도는 책임 회피로 비칠 뿐이다.
국적이탈 신고는 단순한 서류 업무가 아니다. 병역의무와 직결된 민감한 권리 문제이며, 자녀의 장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담당 영사가 “다음 주에나 알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이제라도 LA 총영사관은 기본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언제까지 “자료가 없다”는 말로 면피할 것인가. 한인들의 권익을 위해 존재하는 한국 정부기관이라면 최소한의 책임 의식과 업무 태도를 먼저 보여야 할 것이다. 신뢰를 잃은 공관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뼈를 깎는 각오로 업무 기강부터 바로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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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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