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신지도 어언 40년!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고, 우리 6형제를 꽃인 양 사랑하고 돌봐주셨던 할머니! 나는 결혼 전 까지 내내 할머니하고 룸메이트였었다.
박완서 선생의 산문 중 “8년 동안의 시골생활을 큰 다행으로 알고 남에게 자랑하기 좋아한다.”는 문장이 있다. 나 역시, 개성 외곽에 사셨던 그분처럼, 원주시내를 벗어난 가메기에서 딱 8년을 살고 서울로 이주했다. 그 8년의 시골생활은 할머니랑 계곡에 가서 빨래하고 나물 뜯고 메뚜기도 잡았던 보석 같은 추억들이 많다.
당시 시골집 화단 해바라기 옆엔 늘 이름도 몰라 ‘할머니 꽃’이라 불렀던 키 크고 화사한 노랑꽃이 있었다. 일테면 다알리아 같이 소담했던 그 노랑 할머니꽃은 내 시골시절의 상징이자 유년기의 향수다. 서울로 이사 올 때, 할머니는 여러해살이로 뿌리번식인 그 꽃의 종근을 챙겨오셨다. 다사다난한 서울살이에도 우리랑 동행하게끔.
세월이 흘러 흘러 뉴욕에서 살게 된 동안, 할머니가 하늘로 가셨다. 할머니랑 가꾸었던 화초들이 할머니 대신인양 더 살가워졌다. 특히나 아끼시던 한련화, 목단은 내 곁에 공존시켰지만, 할머니꽃인 그 노랑꽃만은 속수무책이었다. 차타고 가다 어느 집 화단에서 딱 한 번 엿 본 게 다였다.
1990년, 고국을 떠난 지 7년 만에 한국에 갔다. 부모님이 아파트로 옮기신 데다 서울사람들한텐 노랑꽃이 소박데기 처지인지 오리무중이었다. 마침 부모님과 양평콘도로 놀러가게 됐다.
시골에선 분명히 노랑꽃의 자취가 있겠기에 마을 집들 마당탐색 끝에 드디어 발견했다. 주인 아주머니한테 미국에서 왔다며 사정을 얘기하니 선뜻 세 뿌리나 캐줬다. 꽁꽁 짐 속에 무사히 모셔와 세 군데로 분식했다. 허나 생명력이 강함에도 워낙 긴 여행인지라 숨이 막혔는지 기사회생(起死回生)못했다. 오호 통재라!
허나 간절히 염원하면 이뤄지는 법! 할머니가 하늘에서 응원하신 건지, 하느님이 도우신 건지, 나로선 천우신조였다. 한국교회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하는 분이 미국교회답사 차 데려간 화단에 그 노랑꽃이 지천일 줄이야...
염치불구하고 할머니 얘길 했더니 웃으면서 쾌히 댓 뿌리나 주었다. 그게 다 잘 자랐고 맹렬하게 자손을 퍼뜨렸다. 개화기가 5일~7일까지인데다 7월~9월까지 피고지고하면 집주변이 다 환해졌다.
2009년, 고교동창 둘이 서울과 LA서 방문했다. 꽃사랑인 서울 친구가 대뜸 “어머! 이 시골꽃이 뉴욕에도 있네. 이거 나물로도 먹으면 맛있어”했다. 대뜸 이름부터 물으니까 “잎이 세 갈래로 갈라져 삼잎국화야”했다. 비로소 수십 년간 할머니꽃, 노랑꽃으로 불리다가 친구 덕에 처음 본명을 찾은 셈이다. 좀은 막연했던 존재가 이름을 아니 더 가까워졌다.
알고 보니 겹삼잎국화라고도 하고 삼베를 짜는 재료인 삼, 즉 마(麻)잎을 닮아 지은 이름이라고도 한단다. 친구말대로 나물과 차로 먹으면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해 신진대사 촉진에 면역력강화인 기특한 꽃이었다. ‘영원한 행복’이란 꽃말도 내겐 딱 맞는다. 지금도 화단에 한창 흐드러진 꽃을 볼 때면, 할머니와 함께 행복했던 시간들이 상기되고, 또 영원히 그럴 거니까.
그런데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임에도 이곳에서 인기가 시들한 이유가 뭘까? 1,5m~2m의 장신임에도 꽃대는 어처구니없게 가늘다. 도저히 무성한 꽃송이들의 무게감당이 안 돼 눕거나 픽픽 쓰러지기 마련이라서 아닐까? 분양해준 친구들도 그 단점 때문인지 ‘정신없는 꽃’ 이라며 눈 흘기는 눈치다.
처음엔 나도 “아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만큼만 분수껏 피지, 웬 꽃 욕심이 그리 과하지 했다. 그러다 문득 화사한 꽃송이 잔치에 반해 ‘사랑스럽다’ 느낀 순간, ‘과욕이 아니라 생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희생적 헌신과 뜨거운 열정으로 다가왔다.
그 후론 꽃들이 만개하면 지주를 박고 끈으로 한 아름씩 포옹하며 묶어주니 기개가 장대하다. 과연 매사가 어떤 마음과 사선으로 보는 가에 달려있는 건 진리다.
<
방인숙/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