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 쓰는데 있고, 아껴 쓰는 근본은 검소하게 말하는 데 있다. 검소한 연후에나 능히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한 연후에나 능히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한 자가 되는 그 자체가 백성을 다스리는 수장의 의무다.” - 다산 정약용
지난 8월 5일은 다산 정약용 선생 탄신 26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장자크 루소, 헤르만 헤세, 클로드 드뷔쉬와 함께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2012)된지 13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시기를 맞아 다산이 남긴 큰 유업과 위대한 실학정신을 되새겨 본다.
다산(茶山)정약용 (丁若鏞,1762~1836년)은 500여권에 달하는 저술을 통해 정치, 행정, 법학, 경제, 지리, 의학, 공학 등을 아우르며 철저한 실학사상을 펼친 실사구시의 철학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적으로 초시를 거쳐 200명의 진사를 뽑았다.
다산은 22세에 진사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갖추었다. 진사 합격자는 임금님께 인사를 드리는데, 조선왕조 최고의 대학자였던 정조는 다산의 주관식 논문을 읽고 인재로 키워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정조는 성균관 학생들에게 수시로 시험을 치뤘는데, 다산이 계속 장원을 하니 감탄하여 학생인 다산을 수시로 불러 국가정책에 대해 물어 보았고, 다산이 올린 정책 여러개가 국정에 반영되기도 했다.
6년 간의 성균관 공부를 마치고 28세에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들어선 첫날 시(詩)를 지었는데, 공직자로서 공렴(公廉)이란 두 글자를 마음 속에 다짐한 것이었다. 이 다짐은 평생 동안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33세에 암행어사로 경기북부 4개 고을을 암행 감찰하였는데, 농촌 백성들의 황폐하고 비참한 생활과 관료들의 부패에 충격을 받고,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겠다고 생각하며 결심하였다.
정조는 다산이 30세 때 앞으로 10년을 계획하고 수원 화성을 건축하라고 지시했다.
다산은 설계를 하면서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발명하였으며, 거중기 11대를 투입해 2년 4개월 만에 완공하였으니 정조가 감탄해 마지 않았다.
다산의 유일한 배경이었던 정조가 서거하고, 어린 순조가 즉위한 후 노론이 정권을 집권 하면서, 다산은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신유사옥(辛酉邪獄) 때 다산은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 하나로 강진 유배지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1801년 11월 하순, 강진에 도착한 다산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동문 밖 주막에 들려 주모한테 어려운 사정을 얘기했다.
주모가 “방이 하나 있는데 먹여주고 재워줄테니 대신 우리 동네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도 선생님이 없어서 배울 수가 없소. 공부를 가르쳐 주겠소?” 그러자 “다른 건 몰라도 그거라면 하겠소.”
다산은 흔쾌히 허락하고 골방에서 생각했다. “그동안 정치한다고 책도 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마음껏 책도 보고 글도 써야 되겠구나, 하늘이 내게 내린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다산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산은 목민관들의 마음 자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며 개혁을 하지 않으면 국가와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산은 어리고 순한 양들이 제 목소리를 다 낼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그리며, 목민관이 지켜야 할 지침서 목민심서(牧民心書) 48권 16책, 억울한 백성들이 없도록 하는 형옥에 관한 법정서 흠흠신서(欽欽新書) 30권 10책, 정치 사회 경제제도를 개혁하고 부국강병을 목표로 저술한 경세유표(經世遺表) 필사본 44권 15책, “미완성작” 등 등 500여권의 책을 저술하면서, 모든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반드시 대안을 제시하여 실행하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주자의 성리학적 해석과 관념의 문제점도 지적, 실천이 없는 철학과 사상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학연, 학유 두 자식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우리 집안이 언젠가 폐족을 면하는 길은 독서하는 것 밖에 없다.
짐승과 사람이 다른 점은 사람은 책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애비가 벼슬을 했어도 재산이 없어 물려 줄 것이 없는데 야박하다고 서운해 하지 마라. 내가 너희들에게 유산으로 부적 두 글자를 물려줄테니 항상 지니고 다녀라. 그것은 바로 ‘근검(勤儉)’이다.”
이런 분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수장이었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백성은 가난보다 불공정한 것에 분노한다.”라고도 일갈했던 다산의 정신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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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렬/수필가 · 뉴욕 다문화협의회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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