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 벨 불러바드(Bell Boulevard)를 걷는 중에 길가의 높은 전신주에서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멈칫 올려다보니 높은 전신주 변압기를 사이에 두고 커다란 새 둥지가 보였다. 초록색 깃털의 잉꼬가 드나들고 있었다. 예전에 길러본 경험이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새의 울음소리도 귀에 익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 신비롭기도 해서 휴대전화로 사진까지 찍으며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그 이후 교회에 갈 때면 앵무새 둥지를 바라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이러한 앵무새의 무허가 서식처는 전력회사의 골칫거리라고 한다. 나뭇가지로 지은 둥지가 전선에 닿아 합선이 우려되고, 비에 젖은 둥지가 누전의 원인이 되어 정전이나 화재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 회사는 둥지 철거 및 서식을 막는 장애물을 설치해야 한다고 한다.
그 일환으로 교회 옆 길가 전신주에서도 사정없이 둥지가 철거되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안 되어서 전신주 아래 흩어진 자잘한 나뭇가지들을 보며 그들이 다시 되돌아온 것을 알았다.
차츰 식구도 늘리고 둥지도 날로 커지더니, 드디어 우려했던 사고가 터졌다.
어느 주일날 예배 시작 후 몇 분도 안 되어 굉음이 연이어 두세 번 울리더니 정전이 되었다. 급작스러운 실내의 어둠 속에서 창밖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과 휴대전화 불빛으로 1부 예배를 마무리하고, 급히 출동한 전력회사의 수고로 2부 예배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미국 일부 지역의 전신주 변압기에는 앵무새가 무리 지어 둥지를 틀고 서식한다. 이들이 전신주를 선호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몽크 앵무(Monk Parakeet)’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아열대 지역으로, 원래는 높은 나뭇가지에 거대한 공동 둥지를 짓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자연이 도시화되면서 이들이 둥지를 지을 만한 크고 높은 나무가 점점 사라지자 나무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전신주 변압기를 대체 서식지로 선택했다.
이곳은 땅으로부터 높이 솟아 있어 고양이나 다른 천적으로부터 알과 새끼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또한 비바람 같은 자연재해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구조로 둥지를 튼튼하게 유지할 수 있고, 전봇대의 복잡한 전선과 구조물에 나뭇가지를 엮어 둥지를 만들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몽크 앵무는 사회성이 매우 강한 새로, 여러 가족이 함께 거대한 아파트 형태의 둥지를 짓고 사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추운 겨울철에는 여러 식구가 한 둥지에 모여 서로의 체온으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전력 장비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열 또한 이들에게 꼭 필요한 요인이 된다고 한다.
전기 누전 사고로 철거된 지 두 주도 안 되어 그들은 또다시 교회 옆 전신주로 되돌아왔다. 어디를 헤매다 돌아온 것일까? 어쩌랴, 그 강인한 귀소본능(歸巢本能)으로 또 하루 이틀 지나며 둥지는 넓어지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집 칸을 늘리는 대로 전처럼 많은 가족을 불러들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산달이 가까워진 식구가 있을는지도. 이제 닥쳐올 찬바람에 대비하며 좀 더 굵고 튼튼한 가지를 물어오고 있겠지. 그들의 작고 여린 심장은 알고 있을까? 또 무참히 쫓겨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서로에게 기대기를 갈망하며 역경을 감수하고 뿌리를 이어가려는 그 강인한 귀소본능의 몸짓에서 디아스포라의 애환이 느껴진다.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일궈 나가려는 강인한 의지는 하늘 아래 흩어져 사는 생명들이 함께 짊어져야 할 역사의 무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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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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