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간 무역협상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정상회담을 가지는 것을 계기로 양국이 합의를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정상회담까지 합의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앙국 간 최대 쟁점인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의 주요 내용에 대한 양국 간 논의가 아직 교착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치·경제학자들은 한미 무역협상 지연이 미국의 무리한 요구와 한국 정부의 전략 실패가 동시에 작용할 결과라고 분석한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투자 요구는 한국은 물론 미국, 나아가 전 세계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날강도’ 행위라고 규정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3,500억달러 중 상당 부분을 대출이나 보증이 아닌 한국의 재정으로 충당하기를 원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 이익의 90%를 가져가겠다는 언급도 했다.
미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딘 베이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같은 요구는 전례가 없다”며 “1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들이 독일에 요구했던 배상금과 같은 조치를 핵심 동맹국인 한국에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관세 인하를 통해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조금 더 확보하기 위해 이렇게 큰 금액을 포기하는 것은 나쁜 거래”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많은 경제학자들은 한국이 3,500억달러를 토해내지 않고 오히려 지금과 같은 25% 관세를 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까지 지적한다.
한국의 전략적 실수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한국이 합의한 3,500억달러가 문제다. 3,500억달러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이고 지난 9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약 4,400억달러)의 83%에 이르는 액수다. 미국의 요구를 곧이곧대로 들어줬다간 달러가 바닥나고 제2의 IMF 사태가 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합의한 5,500억달러 투자를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이 2,500억달러 이상 합의하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고 지적한다. 그런데도 1,000억달러나 더 많은 3,500억달러에 합의하는, 첫 단추를 잘못 뀌면서 이제 와서 총 투자 규모가 너무 많다느니,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느니, 다년간 분할 투자를 해야겠다고 협상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한국이 감당하지 못할 액수에 합의를 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일본의 총 인구는 올해 기준 약 1억2,310만명이다. 올해 기준 한국의 총 인구는 약 5,115만명이다. 일본의 인구가 한국보다 약 2.4배나 많다.
인구 보다 더 중요한 국내총생산(GDP)의 경우, 일본은 약 4조1,864억달러로 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 규모다, 반면 한국의 GDP는 약 1조8,699억달러로 세계 12위 규모다. 일본의 GDP가 한국보다 약 2.2배나 많다.
일본 역시 터무니없게 높은 5,500억달러 투자에 합의하는 등 잘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본 투자규모가 ‘기준’이 돼 버렸다. 일본 보다 경제규모가 훨씬 작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2,500억달러 정도에 합의만 했어도 협상이 이렇게까지 지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역협상 타결이 지연되면서 한국 기업들만 죽어나가고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은 무역협상을 타결하면서 미국 수출품에 15% 관세만 내지만 미국은 한국은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대부분 품목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차그룹이 25% 관세를 내면서 15% 관세를 내는 일본과 EU에 비해 경쟁력에서 크게 뒤지고 있지만 현대차그룹 외에도 많은 한국 기업들이 여전히 25% 관세를 내면서 심각한 재정타격을 받고 있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 식품과 주류, 다양한 생활 용품들도 25% 관세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한인 등 소비자들은 치솟는 수입 물품 가격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한국정부가 내 줄 것은 내 주면서 지킬 것은 확실히 지키는 전략의 부재가 아쉬웠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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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동 편집기획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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