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도시는 화려한 조명으로 술렁거리며 계절의 메시지 준비에 한창이다.
밝은 풍경 속을 걷고 있지만 머릿속에 들어선 현실들은 출구를 찾아 달리는 터널 속처럼 춥고 어둡기만 하다. 매스컴을 통해 맞닥뜨리는 뉴스들이 때로는 상식과 정의가 사라진 듯해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편견은 아닐 것이다.
마음속에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 또한 나만의 우려일까? 세상이 갈수록 악해진다는 말을 부인해 보지만 스스로 움츠러드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빛”으로 우리에게 오신 성탄의 계절을 맞이하며 어둡기만 한 캔버스 앞에서 생각에 잠겨본다.
빛은 물리적으로는 단순할지 모르나 강력한 진리를 품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빛의 밝기는 주변의 어두움에 비례하여 그 존재감이 더 뚜렷해진다.
대낮 태양 아래 켜진 촛불은 그저 미미한 열기에 불과하지만 칠흑 같은 터널 속이라면 그 느낌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모든 빛이 차단된 암흑 속에서 아주 미약한 촛불 하나는 거대한 태양만큼이나 강렬한 위로와 유일한 구원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의 짙은 어둠이야말로 “참된 빛”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를 우리는 느낄 것이다. 불의가 만연할수록 정의의 외침은 빛이 되어 퍼져야 하고 미움과 혐오가 있는 곳에는 빛으로 발하는 사랑의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어둠은 빛을 덮으려고 날개 펴지만 실상 어둠은 빛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배경일 뿐이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그 밤도 그랬다. 로마의 압제와 종교적 타락에 뒤덮여 가장 어둡던 시대에 화려한 궁전이 아니라 가장 낮고 어두운 말구유에 작은 등불로 오신 이는 절망의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생명의 길을 비추기 위함이었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도시의 화려한 빛은 잠시의 어두움을 잊게 할 수는 있어도 영혼 깊은 곳의 불안과 공허함을 몰아내지 못할 것이다. 네온의 빛이 밝을수록 그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기 마련이나 “참된 빛”은 그 그림자마저 품어 안을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성탄의 의미는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상처 입고 깨어진 마음에 따스한 치유의 광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둠이 깊다는 것은 곧 새벽이 머지않았다”는 희망의 역설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현실적으로 어둡게 다가설 때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눈을 들어 그 “빛”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창틀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겨울바람이 차가울수록 따스한 난로의 온기가 소중한 것처럼 세상이 악해질수록 예수님이 보여주신 공의와 사랑은 더욱 선명한 빛이 될 것이다.
성탄은 단순히 성경 속의 지난날의 기억하이 아닐 것이다. 죄와 악이 깊어지는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지키고 우리는 어두운 세상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어둠을 뚫고 오신 빛을 향하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가장 짙은 어둠 속에서 더욱 발하는 그 빛을 기억하고 춥고 어두운 모퉁이를 밝히는 촛불이 되어보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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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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