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평양 순안공항. 흰색 패딩 차림의 앳된 소녀가 시선을 끌었다.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손잡고 걸어갔다. 북한 매체는 “사랑하는 자제분”이라며 베일에 싸였던 백두혈통 4세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 2013년 방북해 “아기 주애를 안아봤다”던 미국 프로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의 너스레가 현실이 됐다. 전략무기 ICBM과 천진난만한 소녀의 기괴한 조합은 세습체제 연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북한은 치밀한 연출로 주애를 부각시켰다. ‘딸 바보’ 김정은의 어버이 역할에 초점을 맞추더니 갈수록 명품백과 코트, 보석으로 치장하며 주애의 풋내를 지우려 애썼다. 팔이 비치는 시스루 옷을 입고 주민들 앞에 파격적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10대 소녀의 어른 흉내가 반복되면서 ‘성인 지도자’ 이미지가 덧입혀졌다. 지난해 김정은 전용열차를 타고 함께 중국을 찾았다. 주애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사이 퍼스트레이디 리설주와 실세로 불리던 김여정은 뒷전으로 밀렸다.
■ 호칭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주애의 수식어가 ‘사랑하는→존귀하신→존경하는→조선의 샛별 여장군→향도의 위대한 분’으로 변모했다.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의미의 향도는 북한에서 지도자를 일컫는다. 급기야 새해 첫날부터 ‘센터’를 꿰찼다.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성지이자 북한 체제 정통성을 상징하는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면서 맨 가운데에 최고존엄 김정은이 아닌 주애가 섰다. 후계구도 관측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현재 북한에서 누가 주인공인지는 분명해졌다.
■ 북한 최대 정치행사인 당대회가 5년 만에 다시 열린다. 김정은의 통치기반을 더 확고하게 굳히는 자리다. 주애에게 공식 직함을 부여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현대국가에서 전례 없고 우스꽝스러운 4대 세습에 박차를 가할 요량이라면 북한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핵무기와 ICBM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 주애의 폭풍 성장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남북관계에도 큰 부담이다. 정상국가로 선전하지만 오로지 권력에 집착하는 김씨 일가의 야욕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김광수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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