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입춘(立春)과 우수(雨水)를 지나 분명 봄을 가리키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체감 온도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있다. 흔히들 이를 두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말한다. 봄은 왔으되 봄답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보다 더 깊은 단계에 와 있다.
겉으로는 변화와 개혁, 안정과 회복을 말하지만 삶의 현장은 더 각박해져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춘래불춘래(春來不春來), 봄이 왔다고들 하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않은 듯한 상황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은 흘러 봄이 되었으되 모두가 기다려온 진짜 봄같은 봄은 끝내 오지 않은 상태, 곧 춘래불래춘(春來不來春)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말의 봄’과 ‘현실의 겨울’이 극단적으로 분리된 사회다. 정치권은 선거가 끝나면 언제나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고, 국정 안정과 민생 회복을 약속한다. 그러나 그 약속은 대부분 기자회견과 공약집 안에서만 피어난다.
서민의 삶, 청년의 미래, 노년의 불안은 해마다 반복되는 정치적 수사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권력은 교체되었지만 책임은 교체되지 않았고, 구호는 달라졌지만 구조는 그대로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민주당은 스스로를 ‘민주’와 ‘개혁’의 이름으로 정당화해 왔다. 그러나 권력을 쥔 이후의 모습은 과연 그 이름에 부합하는가. 비판은 곧 적대가 되고, 견제는 곧 목을 누르고 팔다리 비틀기가 된다. 다수 의석은 숙의와 절제의 도구가 아니라 밀어붙이기의 근거가 되었고, 법과 제도는 공공의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해석되고 활용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도덕성의 붕괴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도덕적 우월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각종 정치자금과 뇌물 비리에 대한 논란, 내부 인사의 비리 의혹, 당원과 지지층의 극단적으로 편향된 태도는 그 자산을 빠르게 소진시키고 있다.
남의 부패에는 분노하면서 자기 편의 문제에는 침묵하거나 음모론으로 덮는 태도는, 민주주의의 토대인 공정성과 책임 윤리를 무너뜨린다. 이것은 단순한 실망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이 스스로를 통제할 능력을 잃고 있다는 신호다.
작금의 한국 정치는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며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여당은 야당 탓을 하고, 야당은 정권 탓을 한다. 그러나 이 끝없는 책임 전가의 정치 속에서 국민은 늘 구경꾼으로 남는다. 정쟁은 뜨겁지만 민생은 차갑고, 말은 넘치지만 결과는 없다. 정치가 계절을 말할수록 현실의 계절은 오히려 뒤로 밀려난다.
문제는 무능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가 더 이상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도 설명은 없고, 실패가 반복되어도 책임지는 이는 없다.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망국의 지름길이다. 그 길에서 국민의 삶은 조금씩 닳아간다. 희망은 유예되고, 신뢰는 사라진다.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한 상태는 단순한 경기 침체나 정치적 혼란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봄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봄을 믿지 않게 된 사회다.
이 지점에서 2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무기징역 선고는 춘래불래춘, 즉 봄이 왔다고 말들은 하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않은 상황을 대변한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경고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 법치로 다스려질 것이라는 믿음, 상식이 결국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낙관이 모두 ‘희망고문’일 뿐이라는 경고다.
봄은 선언으로 오지 않는다. 정치가 스스로를 찬양하는 순간에도, 시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 봄은 허상이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정치 개혁 구호나 개헌 논의, 세련된 슬로건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의 복원이다. 말에 대한 책임, 권력에 대한 책임, 그리고 실패에 대한 책임이다.
봄은 달력에 먼저 오지만, 진짜 봄은 삶의 현장에서만 증명된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 증명을 계속 미루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묻게 된다. “봄은 왔다고들 하는데, 왜 이 사회는 아직도 겨울인가?” 이 질문은 정치권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을 선택한 국민들 스스로에게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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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완/코리안리서치센터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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