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참사 이후 미국내 아랍인들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찬밥’도 모자라 아예 ‘쉰밥’ 신세다. 아프간 전쟁은 마무리단계로 접어들었으나 이들에게 찍힌 낙인은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전쟁의 후유증이란 포연처럼 쉽게 가시지 않는 법이다.
9월의 ‘그 날’ 이후 아랍계 여객기 탑승객들은 ‘예비 하이재커’ 취급을 당했고 아이들은 ‘탈레반’이라는 친구들의 놀림에 기가 죽었다. 사원이 공격을 당하고, 겁없이 샤핑을 나갔던 부녀자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터번을 썼다는 이유로 번번이 곤욕을 치른 인도의 시크족들이 "우린 회교도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주변의 냉랭한 시선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집단적 증오심이나 인종적 편견은 ‘강남 콩’과 ‘완두’를 구별할 만큼 세세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집단적 증오와 따돌림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다. 적대감의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편안히 숨쉴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왕따를 당한 어린 학생들이 종종 자살을 택하는 이유는 철저한 소외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왕따란 자신이 속한 동아리에서 퇴출당했음을 의미한다. 동질감의 완전한 상실을 강요하는 게 따돌림이다.
아랍인들은 지금 집단 따돌림을 받고 있다. 사회 질서의 엄정한 관리자여야 할 정부도 이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1,000여명의 아랍인들을 테러용의자로 구금하고 외국인 용의자를 군사법원에 회부하기로 결정한 정부는 이를 비난하는 민권단체들을 향해 "이적행위"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급우들의 집단 왕따에 선생님까지 가세한 격이다.
정부의 이런 입장을 다수의 미국인들은 ‘전시의 불가피한 비상조치’로 받아들인다. 전쟁상황에서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반문도 곧잘 듣는다.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하자 미국 정부는 미국 내의 일본계 주민 10만명을 집단수용소로 쓸어 넣었었다. "동류가 아니면 무조건 적"이라는 다급한 사고방식의 소치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국내의 반대 여론은 덮어쓰기가 가능한 상징적 수준에 머물렀던 것 같다.
일본 이민가정의 2세를 뜻하는 젊은 ‘니세이’들은 "나도 너희들과 동류"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전선으로 달려나가 피를 뿌렸다. 따지고 보면 일본인 2세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442부대의 전설은 따돌림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의 기록이었다. 442부대원들이 무너뜨리고 싶었던 적은 유럽전선에서 총부리를 맞댄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하수인들이 아니라 그들의 숨통을 조이는 ‘겉모습 다른 동류’들의 따돌림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의식 속엔 늘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 편견은 건달패들의 위계의식이 그렇듯, 힘센 쪽엔 후하고 약한 쪽엔 박한 게 특징이다. 주류인 백인에 대한 편견과 소수계인 흑인이나 히스패닉에 대한 편견은 같은 편견이라도 내용이 다르다. 주류에 대한 감정은 시기심이 배어든 선망에 근접한 반면 다른 소수계에 대한 감정은 노골적인 멸시에 가깝다.
9·11 테러참사 이후 알지도 못하는 아랍인들에 대해 경계심과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어쩌면 이들은 테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웃의 회교도들에게 적대적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스스로를 주류와 동일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철부지들은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곧잘 남을 따돌리는 대열에 합세하곤 한다.
역사적으로 편견의 최대 피해자는 늘 소수집단이었다. 따돌림을 당하는 이웃이 있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도처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편견의 그물’을 떠올려 보라. 그 안에 사로잡혀 버둥대는 피해자가 소수집단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약자의 동류’로서 그들에게 조금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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