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망대
▶ 신기욱 (스탠포드대 교수, 사회학/국제학)
70년대 유신시절에 한국에서 많이 듣던 ‘유비무환’이란 말이 있다.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늘 경계하고 대비하자며 정부가 애용하던 문구였다. 예비군의 창설이나 민방위 훈련등도 이러한 ‘유비무환’의 일환이었음은 물론이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상황은 매우 달라졌다. 북한의 남침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 반면 미국의 대북 공습으로 인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싱턴 포스트지는 얼마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미국의 대북한 공습 문제를 다룬적이 있다.
과연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 그렇잖아도 뒤숭숭한 판국에 이러한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심란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이는 피할 수도 또 피해서도 안되는 물음이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아직 적지만 일어날 경우 그 피해나 파장은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간 전쟁을 비교적 손쉽게 치른 미국으로선 이 정도로 대 테러전을 끊낼 것 같지 않다. 당분간은 국제여론을 수렴하고 지쳐있는 미군을 쉬게 하기 위한 숨고르기를 하겠지만 머지 않아 또 다른 군사행동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여론 역시 대체로 확전을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확전의 대상이 어디냐에 있다. 현재로선 이라크가 될 가능성이 제일 높지만 북한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북한은 미국의 테러국가의 리스트에 남아있으며 이라크와 함께 미국이 제거하고 싶어하는 ‘깡패국가’(rogue state)의 대표적인 케이스이기도 하다.
물론 북한 공습은 아프간이나 이라크와는 매우 다르다. 우선 주변국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를 얻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고 북한 미사일의 가시권에 있는 일본 역시 쉽게 찬성할리 없다. 또한 수많은 한국민의 희생은 차치하고 라도 DMZ에 전진 배치되어 있는 미군의 희생 역시 감수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공격에의 유혹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첨단무기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미국으로선 재래식 무기로 무장된 북한을 비교적 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어쩌면 국제여론이나 주변 강대국의 입장을 고려해 북한이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난 94년 여름 미국의 북한 공습이 초읽기에 들어 갔었다는 것은 이제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김일성주석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온 것도 바로 미국의 공습을 염두에 둔 것이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전쟁은 가까스로 면했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수 없다.
분명히 밝히지만 한반도 전쟁 가능성은 아직 낮다. 그러나 북한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클린턴 정부가 대북 공습을 심각히 고려했다면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는 부시정부의 입장이 어떨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곰곰히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지난 달초 서울을 방문했을 때 만난 학자, 언론인등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미국의 북한 공격 문제를 논의해 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대부분 전쟁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또 있다 하더라도 이슈화 하기는 좀 거북한 문제라는 반응을 보였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이에 대한 플랜 (contingency plan)을 만드는 것이 정치 지도자들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의 몫인데도 말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미국의 대북 경고가 계속되고 있는 이 시점은 대북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전반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햇볕정책이 올바른 방향을 지향했고 또 정상회담을 포함해 일정한 결실을 맺었지만 이에 집착만 해서는 안된다.
2001년 9월11일의 이후 국제환경은 분명히 변했다. 변화된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책 마인드가 필요하며 한반도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토록 싫어했던 유신시절의 ‘유비무환’의 멘탈리티가 아쉽게만 느껴지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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