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건강이 小康이다.
부서지기 쉬운 현상 유지를 소강상태라고 한다. 알고보면 현실적 상태(현상)치고 소강상태 아닌 것이 없다.
소강 상태를 유지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결국 싸움으로 번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 소강상태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남한과 북한은 不安하다.
경제도 항상 좀 좋았다 나빠졌다 하는 小康상태의 연속이다. 삶이 죄다 그러하다. 小康이다. 부서지기 쉬운 잠정적인 작은 건강이다. 어찌 그러지 않으랴. No Constant. 항상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가 無常하니 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이 끝없는 변화, 측량하기 어려운 변화, 어떻케를 알 수 없는 이 흐름을 우리는 生成변화라 하고(老子) 인연을 따른다고 하기도 하는 것이다.(불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이것이 영원할 뿐이다. 小康일 뿐 大康은 없다는 것이다. 고로 쾌유치 못한 우리는 항상 건강한 삶을 찾아서 치유의 길에 나선다. 시원치 못한, 완전치 못한 小康상태를 청산하고 항상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매우 건강한 大康 상태를 얻고자 하는 것은 인류 이래의 큰 꿈이다. 대망이다. 이러한 大望이 이룩되어 매우 건강한 상태를 大同世界라 하는데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타나는 大同사상인 것이다.
노인은 먹음과 입고 자는 것이 족하여 天年을 다하고, 아이와 여자들은 마음 편히 의지할 곳이 있으며, 고아와 과부와 질병이 있는 자들은 다 거두어 보호할 곳이 있다면 여기가 大同이 구현된 세상이다.
이 곳의 사람들은 다 예의와 염치가 있어서 잔머리를 굴리는 자가 없어져 시비와 도둑질이 끊어지게 되어 문단속을 잊어버리게 되니 잠그지 않고 열쇠없는 문을 大同門이라한다.
돈은 땅에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주머니에 담아두기는 하나 一身을 위하여만 쓰지는 않는다. 힘 또한 몸 속에 머물러 있음을 싫어하여 불가피하게 밖으로 내 보이기는 하나 완력과 호색(好色)과 거만함을 위해서 쓰지는 않는다. 고로 극기와 절제가 되어 예의와 염치를 구현하게 되니 大同이 될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같다는 大同은 사람사람이 다 예의를 다함에 있어서 같고, 염치를 차림에 있어서 같아서 대동사회가 되는 한 예절, 한 염치의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토피아가 어찌 쉽게 되겠는가. 때문에 小康상태는 피할 수 없는 차선책이 되고야 마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비록 나의 부모만을 섬기는 대단치 않는 일이지만 호로자식 보다는 낫고, 비록 내 새끼사랑밖에 여유가 없지만 자식을 버리는 부모보다는 낫고, 法治와 관료가 어찌 예의와 염치심보다야 하리오만은 무법천지 보다 나은 세상이다. 이 사바세계에는 차선만이 나타나는 것이지 최선은 나타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동과 소강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大同에 대한 끝없는 소망과 학습(학이시습)이 없다면 小康정도의 차선적인 현실도 없다는 점이다.
하여서 大同을 늘 마음에 품지 않으면 작은 안녕인 小康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니 마음이 小康상태면 몸은 이미 전투상태로 내려가 있는 것이다. 사람사람의 마음에 예의와 염치가 넘쳐 흐르지 않으면 너와 나 사이에 부서지기 쉬운 소강을 유지하기가 매우 험난한 일이다. 이 원리를 확실히 알고 또 신념으로서 지키지 않으면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은 다같이 형편없는 건강치 못한 삶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는 영원히 건강한 삶을 잊지 말고자 염원하여 유구한 저 강 이름에 대동을 붙였으니 우리의 大洞江이다. 그러나 대동강변을 산보하던 두 청춘남녀인 이수일과 심순애가 끝내 소강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싸움 끝에 갈라선 것은 애닯고 슬픈 일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大同을 같이 간직하지 못했던 허물이 있었던 것일까. 하여간 오랫동안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그들의 비련에 위로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고 노심초사하여 小康상태를 유지하는데 각고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각고한 노력은 반드시 예의와 염치에 있어야 하는 것임을 명심할 일이다. 2천년전에 벌써 법가(法家)들에 내린 큰 꾸중이 바로 이것이다. 法治와 관계개선 따위로 이룩한 세상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이 기초가 허약한 것이라고.
예의를 엄중히 하고 염치를 보강하는 노력은 불식(不息), 쉼표와 마침표가 있을 수 없다. 孔子의 仁은 바로 이점에 있다. 이리하여 스스로 예의와 염치에 강해진 自强과 이 강해진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쉬지않은 不息 ! 이 두가지의 自强不息이 바로 유교의 사랑인 인·의·예·지의 정신인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