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 빅토르 위고. 천수를 누렸고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열정적으로 창작열을 불태웠던 이들의 생명력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겉 사람은 분명 청년이건만 심신이 곤한 많은 이들에게 92세에도 커다란 붓을 휘두르며 원색의 화폭 앞에서 춤을 추듯 그림을 그리는 백발의 피카소 모습이 경이롭기만 하다. 다이애나 하 할머니(75)가 모작한 피카소의 ‘책 읽는 여인’ 앞에 서니 예술에 대한 피카소 못지 않은 그녀의 뜨거운 열정이 전해져 온다. 그녀가 그림도 그리고 차도 마시는 거실을 둘러보자 눈에 익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들이 빼곡하다.
항상 눈에 들여놓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모네의 수련, 르느아르의 프로모너드, 세잔느의 정물. 마치 고흐가 렘브란트, 들라크루아, 밀레의 작품들을 모작하면서 그림을 연마했던 것처럼 그녀는 인상파 화가들의 화사한 색들을 캔버스에 다시 옮기며 회화 기법을 익혔다.
대학 시절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지만 항상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던 열망이 꽃을 피우게 된 건 미국 이민을 오고 나서이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시티 칼리지에 등록을 하고 기초 회화 클래스를 택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이 비로소 시작된 듯한 행복감에 빠졌다.
LACC 라이브 드로잉 클래스에서는 누드 모델을 그리는 기회도 잦다. 처음에는 뭉뚱그려진 형상뿐이던 모델의 모습이 스케치북의 책장을 넘길수록 미켈란젤로의 습작처럼 탄탄한 근육과 탐스러운 가슴, 흘러내린 머리채까지 세세하게 표현된다.
영 자신이 없던 추상화 클래스에서 그녀가 작품의 소재로 선정한 빛의 이미지를 보고 지도 교수는 “다이애나, 이 소재 자체가 추상화예요(Diana, This is already an abstract!)” 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클래스에서 그녀가 그렸던 추상화, 그리고 9.11 테러 사태를 주제로 그렸던 유화는 우수 작품으로 선정돼 LACC 강의실 벽을 장식하고 있다.
평소 즐겨 입는 자주색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은 모습의 자화상은 정지된 한 장면으로 그녀의 삶과 예술, 사랑을 놀랍도록 표현해 냈다는 느낌을 준다.
더 배울 만한 것도 없을 텐데 그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학교에 다니며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보라색 등꽃 향기 짙은 교정에 들어서면 그녀는 나이를 잊고 배꽃 가득 피어있던 이화여대 교정에 서던 때로 되돌아간다. 목적이 있는 삶은 아름답다. 아직 그리고 싶은 것이 많은 그녀는 영원히 꿈꾸는 ‘백발의 소녀’. 그녀가 늙지 않는 비밀을 엿본 주말 아침 햇살이 더욱 찬란한 빛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청춘은 슬픔 속에서라도 언제나 그 자체의 광택이 있다.’ ‘짧디 짧은 게 인생이다.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면 인생은 더 짧아진다.’ 문호 빅토르 위고의 명언에는 삶에 대한 예지가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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