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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펜실베이니아주의 허쉬라는 마을은 뉴욕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걸리기 때문에 학생들이 하루코스 야외활동으로 많이 찾아가는 곳이다.
허쉬 초콜릿 공장이 있는 그 곳은 초콜릿이 마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부인사들에게 초콜릿 제조과정을 보여주고, 초콜릿을 공짜로 주기도 한다. 타운 사람 대부분이 초콜릿 공장에 근무하고, 지주회사인 허쉬 트러스트는 학교와 병원을 지어 기업 이익을 지역에 환원하는 모범적인 기업이다.
그런데 이 조용하던 타운이 지난 7월말 이후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허쉬 트러스트가 초콜릿 회사인 허쉬 푸드의 지분 56%를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허쉬 푸드는 108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창업자 밀턴 허쉬는 초콜릿을 팔아 번 돈으로 불쌍한 청소년을 돕기 위해 허쉬 트러스트라는 법인을 설립했는데, 이 법인은 현재 54억 달러의 자금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트러스트가 방만하게 자금을 운영하다가 돈이 부
족하게 됐고, 허쉬 푸드의 지분을 매각해서 보충하려고 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초콜릿 회사가 치열한 경쟁으로 수익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값이 좋을 때 팔아야 한다는 경제논리가 숨어있었다. 미국 초콜릿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경쟁력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경쟁사인 스위스의 네슬레와 영국의 캐드베리가 공동으로 105억 달러를 주겠다고 덤벼들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들고 일어섰다. 그들은 매각 반대 서명운동과 시위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자신의 마을 이름이 들어있는 회사를 외국기업, 그것도 허쉬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에게 매각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갈 마이크 피셔 법무장관이 끼어들어 허쉬 푸드의 매각은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청원을 냈고, 주 법원마저 마을사람들의 편을 들어 이를 승인했다.
이 와중에 시카고에 본사를 두고 있는 껌 회사 위글리가 네슬레보다 더 많은 125억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위글리는 미국 회사이고, 코뮤니티 발전을 약속함으로써 허쉬 마을의 지역정서를 녹여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17일 허쉬 트러스트의 이사회는 장장 10시간의 난상토론을 벌여 허쉬 푸드를 매각하지 않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역정서에 밀려 경제논리를 포기한 것이다. 한 달여간 진행된 허쉬 초콜릿의 드라마를 보면서 마치 한국의 하이닉스 처리과정과 비슷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허쉬 푸드와 하이닉스의 공통점을 몇가지 들어보자.
우선 집단 정서라는 비경제적 요소가 기업 매각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와 타운의 범위에 차이가 있을뿐, 한국의 국민정서나 허쉬 마을의 지역정서가 다를 게 없다.
또 정치인들이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경부 장관시절에 하이닉스 매각을 선두에서 지휘했던 진념 전 장관은 경기도 지사에 출마하면서 하이닉스 매각을 보류하는게 좋겠다고 후퇴했고, 야당 후보들은 노골적으로 하이닉스 독자 생존론을 펼쳤다.
자본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이나,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한국에서 지역주의와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허쉬 초콜릿과 하이닉스 반도체는 분명하게 다른 차이점이 있다. 허쉬 푸드는 비록 수익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지만, 분명하게 흑자기업인 반면에 하이닉스는 엄청난 은행 부채를 안은채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허쉬 푸드의 매각 논쟁은 사회 봉사를 얼마나 잘 하느냐 하는 토론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지만, 하이닉스 매각 논쟁은 한국기업이냐, 외국기업이냐 하는 논쟁에서 빚어지고 있다.
전윤철 부총리겸 재경부 장관이 며칠전 한 모임에서 “하이닉스 매각을 반대하는 것은 국수주의”라고 말했다. 그말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기 전에는 누구도 하이닉스 매각을 앞장서서 주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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