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평생 돈을 모을 줄만 알지 쓸 줄을 모른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얼마나 돈을 귀하게 여겼는지, 살아생전 수전노란 소릴 들을 정도로 쓰지도, 남을 주지도 않았다. 어쩌다 손님이 오거나 집안에 누가 생일이 되면 고깃국을 끓였는데 말이 고깃국이지 기름만 둥둥 떠 정작 살코기는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끔찍하게 아끼던 손주에게 용돈을 준다는 것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손주의 운동회 날, 할아버지는 늘 인두로 다려 고이 모셔둔 돈더미에서 100환 한 장을 꺼내 용돈으로 주었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보여만 주고 다시 가져 오라"는 것이었다. 그 만큼 그는 돈을 쓸 줄도 모르고 모으기만 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 한국은 빨간 돼지저금통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저축이 생활화 돼 있었다.
크고 작은 저금통에 한 푼 두 푼 모으거나 국민저축통장에 매월 돈을 적립하며 저축의 재미를 느끼면서 우리는 자랐다. 당시 정부에서는 저축을 정부시책의 일환으로 권장하던 시대였다. 물론 이 당시 일어난 저축의 붐으로 경제부흥을 가져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경제구도와는 역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이란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원할하게 경제가 굴러간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이면 썩듯 돈도 마찬가지이다. 옛날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돈은 돌고 도는 것이어서 풀어쓰지 않으면 문제이다. 말하자면 돈은 쓰자고 있는 것이지 움켜쥐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돈의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물품이 공장에서 생산되면 판매상이 매입하고 가게의 물건은 소비자가 열심히 사고해야 현대말로 금융유통, 돈의 순환(moneytary circulation)이 원활해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가 침체돼 마비상태에 이른다. 이런 상황이 바로 지금의 일본 형국이다.
저축으로 유명한 일본이 지금 허우적거리는 것도 바로 돈의 흐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빚어진 현상이다. 일본은 국민들이 지난 20년간 저축을 많이 해 나라는 부자인데 돈을 쓰지 않아 나라가 부유 중의 빈곤국가로 전락해 있다. 이 여파는 미국의 경제와 세계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은 달러 보유국 세계 제1위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움켜쥐고 있다.
일종의 경제구조의 마비현상을 겪고 있다. 은행에 돈은 많아도 꿔 가는 사람이 없고 돈이 있으되 쓰지 않아 돈이 그대로 남아 돌아가는 실정이다. 돈이란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 않는다면 썩을 수밖에 없다.
물건을 사고 팔지 않으면 누구를 주어서라도 그 돈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상의 유통공급이 원할하게 돌아간다. 한국이 소비의 천국이라고는 하지만 경제가 살아남는 것을 보면 그나마 이런 유통구조가 활발하게 돌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의 소비풍조도 무작정 질타만을 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들의 소비율이 높아 돈의 흐름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생산이 증대되고 수요공급이 원할해 경제순환이 잘되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
미국은 지난 9.11 테러 직후 경기가 냉각되자 부시 대통령이 국민들로 하여금 구매욕구를 부축이기 위해 여행가기와 백화점에 나가 물건 사들이기를 호소했다. 돈의 원할한 유통을 위한 대통령의 고육지책이었다. 돈의 흐름을 말하자면 한국인처럼 꽁꽁 돈을 신주단지 모시듯 움켜쥐고 있는 민족도 드물다고 한다.
중국인도 그렇지만 특히 한인들은 돈을 은행에 넣기보다 세금을 포탈하기 위해 현금을 침대 밑이나 장롱 안에 꼭꼭 숨겨둔다. 아니면 돈 세탁을 하거나 어떻게 해서든 해외로 빼돌려 돈에 돈을 쌓아 놓고 쓰지도, 풀지도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여기도 어렵고 저기도 어렵고 아우성들인데 세계 경제마저 급강하하고 있다. 그런데도 혼자만 살겠다고 돈을 풀지 않는다면 경제는 점점 더 침체될 수밖에 없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돈도 가진 자가 풀어야 없는 자도 풀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부자들이 장롱 속에 숨겨둔 뭉칫돈을 팍팍 풀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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