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동북부 지역에 내린 폭설로 출퇴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주말 당직 때는 집에서부터 7번 전철역까지 10분 거리를 30분이나 걸려 걸어서 오가야 했다. 주차장 눈더미 속에 파묻힌 자동차를 운행은 커녕 꺼낼 엄두도 못 낸 채 롱코트에 목도리와 귀마개를 하고 눈장화를 신은 완전무장 자세로 길을 나섰다.
주말에는 간간이 오던 버스마저 끊기고 눈이 펄 펄 내리는 길가에 서니 그야말로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가 따로 없었다. 아무리 교통수단이 없어도 가야할 사람은 가고 와야 할 사람은 와야 하듯 신문을 만들러 회사로 가야만 했다.
차도에 내린 눈을 인도 옆으로 치워 쌓인 눈이 산을 이루고 있고 인도는 발을 디딜 때마다 푹푹 빠질 정도로 눈구덩이를 이루고 있으니 온 동네가 스키장이었다.하루종일 눈이 오더라도 잠시라도 나와서 집 앞 도로를 치워 발 디딜 소로를 뚫어놓은 곳은 ‘이 동네 사람들은 부지런하네’ 싶고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언덕이 되어버린 곳은 도저히 갈 수가 없어 그나마 눈이 다져진 차도로 내려서 가며 ‘이 동네 사람들은 합동으로 게으르네’ 했다.
이번 겨울은 참으로 눈이 푸지게 왔다. 한번 왔다 하면 발이 푹푹 빠질 지경이니 극심한 교통 체증은 물론 독감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도 많았고 며칠간 날이 맑아 기껏 세차하고 나면 다음날 또 눈이 내려 차체는 다시 흙먼지투성이로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왜 이렇게 눈이 내리는 걸까?
이번에 내린 눈은 기상학자들에 의하면 남서부 해안지역 폭풍우가 캐나다 지역에서 형성된 찬바람과 결합하면서 기록적인 폭설로 이어졌으며 쌓인 눈이 갑자기 녹으면 홍수도 우려된다고 한다.
적당히 내리는 눈은 낭만적이라고 하지만 이번처럼 속수무책으로 내린 눈은 공항이 폐쇄되고 여행 떠난 길손의 발을 묶고 전철과 버스의 정지 및 연착 사태를 속출시켜 많은 사람들을 곤란에 빠뜨린다. 폭설 속에 샤핑 하러 나오는 사람도 없으니 경기도 엉망이 되어버린다.
나 역시 당장 출퇴근을 힘들어하면서도 이렇게 하늘이 재색으로 내려앉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이 내리면 멀리 떠나고 싶다. 폭설주의보가 내린 낯선 어촌의 바닷가, 인가가 몇 채 없는 화전민촌 너와집에 머물며 시간
과 공간을 잊고 싶다. 정지된 인생의 진면목을 보고싶다.
톱밥 난로가 벌겋게 달아오른 간이역 대합실에서 언제 올 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며 창 밖으로 펄 펄 나리는 눈을 보고 싶기도 하고 깊은 산사의 절절 끓는 아랫목에서 책을 읽다가 사르락 사르락 문지방을 흔드는 소리에 방문 열고 내다보니 하늘을 점점으로 물들이며 쏟아지는 폭설을 보고싶다. 그때 바람결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도 들리겠지.
이처럼 폭설이 내리는 날이면 사무치는 고독과 목 메이는 그리움만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머물고 싶을 때 머물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싶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뿐이다.
휴가 기한이 없이, 시간을 풀어놓고 쓸 수 있고, 돌아갈 걱정을 않고, 마음 걸리는 곳 없이 살 수 있는 때, 그러한 삶이 내게 오기는 올까. 언제쯤이면 책임 질 사람이나 해야 할 의무 없이 홋홋한 차림으로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올까.
아마 그러한 자유가 정작 주어지면 주체할 수 없어 할 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무섭고 싫어서 도망갔다가 오히려 그 미움조차 그리워 다시 돌아올 지도 모르겠다.이번에 무지막지하게 내린 눈으로 우리 가족 중 한사람도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발이 묶여 항공편을 포기하고 렌트 카로 샤롯데, 워싱턴D.C, 볼티모어를 거쳐 뉴욕까지 온갖 고생을 다 하며 원래 예정보다 이틀이나 늦게 와야 했다.
이처럼 온갖 생활의 불편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에 홀로 깨어 베란다로 내려다보는 흰눈 속에 폭 쌓인 밤풍경은, 그 적막함이 좋았다. 눈은, 오랜만에 한동안 잊어버린 감성도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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