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새 정부가 들어선 후 한국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혼돈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생각이 서로 다른 시민그룹간의 마찰, 전교조와 교총의 대립, 노조와 한총련의 집단행동 등 집단이기심의 대결장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정치적으로 소수정부인 신정부는 이런 난국을 타개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드디어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말았다. 이 때문에 한국이 4.19 직후와 같은 혼란 상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보통 어느 정권 때나 집권 초가 이렇게 어지러운 적은 없었다. 신정권이 출범하면 가장 먼저 불어닥치는 것이 개혁을 빙자한 사정바람이다. 이 바람이 불면 공직사회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사정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납작 엎드리기 때문에 정부의 말이 그렇게 잘 먹혀 들어갈 수가 없다.
말하자면 사회 기강이 잡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정의 회오리바람이 힘
을 잃으면서 구태가 되살아나게 되고 집권 말기가 가까워지면 집권층의 비리마저 불거지면서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 되는 일이 되풀이 되곤 했다.
그런데 과거 어느 정부 보다도 개혁 의지를 내세웠던 노정부는 칼자루 한 번 휘둘러 보지도 못한 채 힘을 잃고 말았다.
지금 한국의 이기집단은 더 이상 대통령의 눈치를 보거나 정부를 겁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정부를 힘으로 얼마든지 밀어부칠 수 있다는 생각인 모양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정부를 쉽게 보는 것이 아닐까. 대통령이 막말을 하고 야당도, 국민도 막말하는 세태를 보면서 얼마 전 노정부 출범 100일이 마치 퇴임 전 100일 같은 착각마저 들기도 했다.
노정부가 출범할 때 노대통령을 극단적으로 배척하는 사람들은 이 정부가 일년을 넘기는가를 두고 보자는 극언까지 했다. 5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일년을 못 넘긴다는 것은 도중 하차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불행한 일이므로 그런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임기를 다 채운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에서만 보아도 이승만대통령은 4.19혁명으로,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는 5.16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실각했다. 박정희대통령은 임기 도중 부하의 총에 피살되었다. 건국 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난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4명 뿐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임기를 끝낸 대통령들도 퇴임후에는 모두 국민 앞에 떳떳이 나서지 못하는 죄인처럼 되어버렸다. 전두환, 노태우는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과정에서 정당성이 결핍된 데다 재임중 막대한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이며 김영삼은 국정 운영을 제대로 못해 경제위기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퇴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도 대북 송금사건을 계
기로 서서히 위기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대통령을 못해 먹겠다가 아니라 대통령을 잘 해먹기는 정말로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러면 이렇게도 대통령에게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대통령을 잘 해먹을 수 있을가. 가장 올바르고 유일한 해답이 있다. 대통령이 국민들과 코드를 맞추는 일이다. 어느 면에서 보면 이승만과 박정희는 훌륭한 대통령들이었지만 이승만이 부정선거를 한 것과 박정희가 심한 독재를 한 것은 국민과 코드를 맞추는데 실패한 일이다.
DJ가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햇볕정책을 추진하고 결과적으로 노벨평화상까지 탄 것이 개인적 욕심이었는지, 또는 소신이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국민 대다수와 코드를 맞추지 않고 감행한 일이었다.
대통령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많은 국민들을 자기의 코드에 맞추도록 강요할 수 있지만 권력을 놓는 순간에는 그 반사력을 맞아 쓰러지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현재 사면초가에 직면한 노무현 정부가 살아남을 수 있는 비방은 한 가지 밖에 없다.
지금 노대통령의 소신이 어떻고 정부의 개혁 방향이 어떻다는 생각은 말끔히 지워버리고 다수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가에만 따라가면 된다. 이승만도 “국민이 원한다면...” 했고 4.19 후 정부가 동원했던 계엄군도 국민 편에 섰다. 노대통령이 국민 편에 서면 안될 일이 없다.
그렇게만 한다면 임기를 훌륭히 마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퇴임 후에 적어
도 “민주주의는 제대로 한 대통령”이라는 명예스러운 딱지를 달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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