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
▶ 김명욱<종교전문기자.목회학 박사>
세상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면 정몽주 스타일과 이방원 스타일이 있다고 하겠다.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와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는 두 스타일을 대변해주는 시들이다.이방원은 이성계의 아들이다. 이방원은 아버지가 역성 혁명을 추진하고 있을 때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시를 보낸다.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리. 만수산(萬壽山) 드렁츩이 얼거진들 긔 엇더하리. 우리도 이갓치 얼거져 백년(百年)까지 누리리라." 시를 풀면 이렇다. "이렇게 산들 어떻고 저렇게 산들 어떠하리오. 만수산에 마구 뻗어난 칡덩굴이 서로 얽혀진들(얽혀진 것처럼 산들) 그것이 어떠하리오. 우리도 이와 같이 어울려져 오래오래 살아가리라."
이방원의 이 시는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과 청구영언(靑丘永言)에 나와있다. 시에 나와 있는 만수산은 개성의 서문밖에 있는 산으로 현재 고려 왕실의 일곱 능이 있다. 1392년 이방원의 이 시를 받은 포은 정몽주는 단심가를 시로 써서 보낸다. 정몽주의 단심가는 지조와 충절을 나타내는 한국 시조의 대표적 시라 할 수 있다.
"이 몸이 주거주거 일백 번(一白番) 고쳐 주거 백골(白骨)이 진토(塵土) 되어 넉시라도 잇고 없고 님 향(向)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시를 풀면 이렇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되풀이해 죽어서 백골이 티끌과 흙이 되어 변해 없어지든 말든 임(고려왕조)을 향한 일편단심의 충성심만은 변하지 않으리라."
정몽주의 이 시는 청구영언(靑丘永言)에 나와 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역성 혁명으로 고려가 기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자신에게 녹을 먹여주던 고려왕조를 위해 끝까지 지조를 지킨다. 결국 정몽주는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살해된다. 정몽주의 충절이 담긴 이 시는 지금도 충성과 지조를 상징하는 것으로 많이 암송된다.
이방원 스타일처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물결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지조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삶을 아주 편하게 살아가는 처세일 수도 있기에 그렇다. 저 사람 말도 옳고 이 사람 말도 옳고 그냥 그런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훨씬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살아갈 것 같다.
하지만 정몽주 스타일처럼 오로지 지조와 절개와 충절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삶이 피곤할 것 같다. 이 사람 말도 저 사람 말도 자기의 말과 틀리면 따라가지 않는 지조의 사람들은 적을 많이 둘 것 같다. 그리고 모함을 많이 살 것도 같다. 그렇지만 세상이 올곧게 가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도 같다.
정몽주와는 대조적인 인물이 황희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졌다. 이 때 이성계는 벼슬에서 물러나 시골에 가있는 황희(1363-1452)를 불러 올려 벼슬을 주었다. 황희는 태조부터 세종까지 4대에 걸쳐 조선 초기의 국가기반을 닦는데 공을 세웠다. 황희는 세종 때는 18년 동안 영의정을 지내면서 임금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다.
하루는 황희 정승의 집안 노비 두 사람이 서로 다투다가 주인을 찾아와 상대방의 잘못을 일러바쳤다. 황희 정승은 한 노비의 말을 다 듣고는 "네 말이 옳다"고 했다. 또 황희는 다른 노비의 말을 다 듣고 "네 말도 옳다"고 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부인이 도대체 그런 말이 어디 있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황희는 "부인의 말도 옳다"고 하였다.
정몽주는 이방원의 회유를 마다하고 결국 55세(1337-1392)의 나이로 죽었다. 황희는 이조의 벼슬자리에 올라 89세까지 살며 부와 명예를 누렸다. 하지만 후세의 학자들은 황희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다. 정몽주가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타살될 때 황희는 겨우 29세에 불과했다. 그의 나이가 그를 비난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쉽게 살아가는 방법이 이방원의 ‘하여가’에 나와 있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리, 그냥 그대로 살아가면 좋을 걸. 이래도 예스, 저래도 예스 하면서 예스 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짤리거나 밀리지는 않는다. 최소한 현상유지는 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오로지 지조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야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는 ‘단심가’를 부른 정몽주 같은 사람들을 높이 평가한다.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진 이방원과 정몽주이지만 우리가 그들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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