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쯤 주말을 포코노 휴양지에서 보내었다.인적 없는 숲속의 집 덱에 앉아 쾌적한 공기를 만끽하며 책을 읽는데 자꾸만 마음을 빼앗는 소리가 들려왔다.소나무 숲에 깃든 쓰르라미가 쓰르람 쓰르람 한여름이 다 갔음을 알리고 가끔 까치가 깍깍거리고 큰소리로 마당을 질러 날아가곤 했다. 나지막한 집들이 드문드문 있는 뜰에는 사슴들이 마치 제 집 안마당 마냥 편하게 노닐었다. 살아있는 자연의 소리들이 궁금하여 도저히 책에 몰입할 수가 없어 종내 책을 덮고 말았다.
집 바로 앞에 펼쳐진 숲은 나무들이 어찌나 무성한지 대낮에도 시야가 어두웠다. 이 속에 화려한 뿔을 자랑하는 숫사슴이 웅대한 자태를 드러냈다가 위엄 있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암사슴과 새끼 사슴은 심심하면 모습을 보였다 인적이 나타나면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양상추를 잔디밭 위에 흩어놓고 사슴이 먹으러 오길 기다리며 주차된 차안으로 들어갔더니 앞 윈도우 앞으로 하루살이들이 무더기로 춤추고 있었다. 환한 햇볕에 일렁이는 움직임이 요란하기짝이 없다.앞 유리창을 내려 잔디밭을 내려다보니 불어오는 바람결 따라 잔디가 흔들리는데 온몸을 흔들며 아는 척 하는 것이 살아있는 풀들의 합창처럼 들린다.
자세히 보니 그 흔하고 평범한 풀 하나 하나가 다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 달랐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뻗어서 자기를 알아달라고 아우성이다.
잔디 속에 간간이 피어난 야생화도 하나같이 모양과 색깔이 다른데 그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마침 차안에 클래식 CD가 있어 차문을 활짝 열고 리스트(Liszt)의 바이얼린과 피아노 콘체르토 ‘숲의 흔들림’과 ‘지신의 춤‘을 틀었다. 자연과 클래식의 영롱한 조화가 더욱 멋지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덮어버린 책처럼 얼마 후 CD 플레이어를 껐다.잠든 숲이 조용히 깨어나는데는 넉넉한 햇볕과 맑은 공기와 푸근한 흙 냄새, 원시 자연의 투박한 소리와 가식 없는 율동이 어떤 인공적 소리보다 나았고 어떤 위대한 글보다 훌륭했던 것이다.
살아있는 자연은 모든 골치 아프고 복잡하고 가슴 아픈 일들을 잊게 해주었다. 풀 한 포기,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 군무를 보여준 하루살이떼, 야생사슴들이 늘 집과 일터만 오가며 정신없이 사는 내게 커다란 평화와 안정을 주었다.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세계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출근길을 몽롱하게 만들었다.유엔 총회가 있다고 맨하탄 방향 차들이 막히면서 출근길이 평소보다 30분 이상 더 걸렸다. 먼지와 소음 가득한 도로 위에 주차장이 되어버린 속에 운전대를 잡고 마냥 있으면서 얼마 전까지 사슴이 앞마당을 오가는 속에 신선이 되었던 내가 왜 여기 있지 싶었다.
그러면서도 예전 같으면 막히는 차량에 짜증 나고 초조했을 텐데 앞차가 새치기를 해도 좋고 한 블럭 겨우 갈 때마다 빨간 불이 켜져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머릿속이 긴장감으로 팍 팍 튀어야 사는 평소 사이클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대자연 속의 짧은 휴식은 넉넉한 여유를 마음속에 담아온 것이 큰 수확이랄까? 매사를 관용의 시선으로 보게되고 말소리조차 낮고 느릿느릿해진 것이 자연이 모진 세상을 대처해나갈 지혜를 준 것 같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자 세파에 시달린 나(‘세상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않았다’)는 다시 자연의 품에 안기고싶다. 언제나 평화롭고 온화한 사람이고 싶은데 자꾸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 화 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약발(?)이 떨어질 때가 되었나보다.
조만간 단풍 구경을 가야할 것같다.숲이 울창한 호수가 단풍이 올라온 나무 그림자로 붉게 물들어 지상과 지하의 경계가 없어지면 이곳이 하늘인가 땅인가 하는 선인의 경지를 맛볼 수 있는 가을 단풍놀이, 꼭 가야할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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