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계절, 가을이 깊어간다. 이 계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맑고 투명한 가을하늘, 그리고 찬란한 햇빛 속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게 되는 절기가 바로 이때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생이 현재 어디까지 와 있으며, 또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많은 상념에 잠기게 된다. 그래서 유독 잠을 설치게도 된다.
어디선가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에 잠 안 오는 시각, 창밖에 흔들리는 바람소리, 나뭇잎 굴러가는 소리, 게다가 붉게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보면 왠지 모르게 휑하니 공허감을 느낀다. 이럴 때면 유독 책이 읽고 싶어지는 것은 나만에 해당되는 것일까. 특히 요즘처럼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가을에는 더욱 책에 대한 애착이 강렬하다. 가을은 정말 독서의 계절인가.
풍요를 상징하는 계절, 이 가을엔 한번 독서삼매경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가을을 만끽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런지.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로 말도 살찌지만 우리의 영혼도 살쪄야 하는 계절이다. 이런 절기에 추수하는 마음으로 사색하며 책을 읽는다면 우리의 정서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1세대인 우리는 컴퓨터와 친숙한 2세들과 달리 옛날부터 책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책이란 언제든지 보면 정이 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책이란 읽는 사람에게 양식이 됨은 물론, 길잡이가 된다는 사실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독자들과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볼 수 있는 책 몇 권을 소개한다.
우선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권한다. 남아공의 백인작가로 시카고 대학 교수로 있는 이민자 존 쿠체가 쓴 ‘은혜가 아닌 것(disgrace)’으로 이 책은 영국에서 독립된 남아공에 남아있는 백인의 추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해방 후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서 풀죽어 있는 일본인의 모습과 같다는 점에서 관심사를 불러일으킨다.
이 책은 주인공 백인교수가 제자와의 불륜으로 대학에서 쫓겨나 딸과 시골에 가 사는 도중 흑인에게 강도 당하는 얘기, 검은 분노가 밀려오는 얘기 등 남아공화국내 백인 실상이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또 작가는 여러모로 짓밟힌 민족이 다시 일어나는 모습도 그렸다. .
또 요즈음 베스트셀러로 화제에 오른 캐나다 국민작가 가브리엘 루아의 ‘내 생애의 아이들’도 읽을 만하다. 작가가 풋내기 시골 여교사시절 학생들과 펼쳤던 순수한 생활과 교감을 그려 신선한 감동을 준다. 김주영의 자전 소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어릴 때부터 살아온 고생담과 감성이 자라는 과정을 아주 현실적으로 아름답고 따뜻하게 그렸다.
소설가 한기영씨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것을 소재로 어릴 때 벌레를 가지고 놀았던 외로움을 다룬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이외에도 오래 전 이미 출간돼 화제가 됐던 책으로 이번에 다시 나온 박경리의 소설 ‘성녀와 마녀’는 특별히 읽는 맛이 난다.
박경리의 가장 첫 번째 연애소설로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한번쯤 사랑에 빠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 이 계절에 한번쯤
읽어도 좋을 듯 싶다. 이 책에서는 아 그런 사랑도 있었구나 하는 연애에 담긴 아픔과 사랑의 절망과 모순을 읽게 한다. 이 소설은 부유한 가정의 한 남자가 불륜의 피가 섞인 대단히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인 한 여성(마녀)을 좋아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또 다른 얌전한 여성(성녀)과 결혼해 마음속으로는 평생 옛 애인을 가슴에 품고 그리며 살아가는 내용이 소재이
다.
60년대 자유연애 풍조가 시작될 무렵과 오늘날 사랑의 기준이나 연애관, 가치관과의 차이를 이 소설에서 감지할 수 있다. 이 가을에 이런 책을 한번 읽고 지나가면 여성의 위치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를 알 수가 있다. 남성들도 그 당시 사랑의 표현과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톨스토이의 단편선 같은 것은 아무리 읽어도
싫증이 안 나는 작품이다. 위대한 작품은 아무리 읽어도 그 내용이 소진되지 않는다. 이런 책을 특별히 이 가을에 읽으면 더욱 감칠 맛이 나지 않을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