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친지의 아기 돌잔치에 다녀왔다.
일식부페 식당에서 열린 돌잔치에는 거의 100명이나 되는 손님들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 풍선으로 장식한 식당 한쪽의 맨 앞 테이블에 색동 돌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기와 부모가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커다란 케익과 떡, 과일로 풍성한 돌상이 차려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손님이 너무 많이 온 관계로 업소에서 탁자와 의자를 다닥다닥 붙여놓아 옴짝달싹을 하기가 힘들었고 분위기는 자연히 산만해졌다. 안 그래도 이런 자리에 가면 일년에 한두번 만나는 친지, 어른들이 계시기 때문에 돌아다니며 인사하기 바쁘지 않은가.
또 아기 부모의 친구들인 젊은 부부들은 아기들을 안고 다니며 안부를 묻느라 장내는 더 소란했다. 대개 이 시기의 부부들이란 결혼, 이사, 출산, 육아, 직장과 사업의 이동 등으로 계속 변화가 무쌍한 시기를 살기 때문에 돌잔치에서는 으레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기도로 시작된 행사에서 목사님은 열심히 설교하였으나 주위에 있는 가족 몇사람을 제외하고는 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웨이트리스들은 부지런히 테이블을 오가며 마실 것을 갖다놓고 전표를 챙겼고, 사람들은 이야기하느라 정신없었으며, 많은 테이블에서 어린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목사님이 간신히 식기도까지 마치자, 사람들이 우루루 일어나 음식을 가지러 나가면서 혼란은 더 심해졌다.
흔히 어른잔치가 되어버리는 대부분의 돌잔치들이 그렇듯, 이럴 때 잔치의 주인공이 한 살 생일을 맞은 아기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그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외에 몇사람 되지 않아 보인다. 인사치레로 ‘아유, 예쁘네’, 혹은 ‘잘 생겼다, 그녀석’ 한번 하고말면 그뿐, 어떤 사람은 이게 돌잔치인지조차 잊었는지 오자마자 친구, 친척들과 악수하고 떠들다가 밥만 먹고 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아기는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다가 행사 중간에 예쁜 드레스로 갈아입었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긴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준들 그 아기에게 무슨 달라질 것이 있으랴. 일생에 전혀 생각나지 않을 자신의 잔치가 바로 그날일 것이다.
돌잔치는 왜 하는 것일까?
신생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옛날에 많은 아기들이 한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돌잔치를 크게 했다고 전해진다. 한 살이 되도록 살아 남았으면 앞으로의 생존 가능성도 높아지므로 그것만도 큰 기쁨이고 축하해야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돌잔치의 주된 이유라면 지금 세상에 아기가 한 살을 넘겨 살았다는 것이 무슨 큰 뉴스이며, 일가친척 다 불러모아놓고 큰 돈 들여가며 축하해야할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기가 첫 번째 맞는 생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문화, 미풍양속이므로? 친지들에게 아기를 보여주는 날? 돌잡이를 해야하기 때문에?
그보다는 좀 더 의미있는 날을 찾아서 아이가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훗날 기억할 수 있는 잔치를 해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처음 학교에 입학했다든지, 콩쿨 입상등 어떤 목적을 달성했을 때, 틴에이저가 되는 생일, 성년이 되는 날 등 일생에서 기념비가 될만한 시기에 잔치를 열어주는 것이 훨씬 뜻깊고 기억에도 남을 행사가 되지 않을까?
물론 자녀의 한 살 생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부모가 여긴다면 당연히 돌잔치를 해야할 것이다. 단지 남들 다 하기 때문에 나도 하는 돌잔치는 바쁜 세상에 참석자들도 별로 즐겁지 않은 인사치레요, 형식적인 모임일 뿐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기왕 초대받아 갔으면 참석자들은 적절한 매너를 지키는 것이 좋겠다.
나는 우리 아들의 돌잔치를 거의 12년전 치렀는데 그때 나 역시 아무 생각없이 남들 하는 대로 호텔의 방을 하나 빌려 성대하지도, 조촐하지도 않게 치렀다. 지금이라면 아마, 가족들과 의논해 그런 잔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별히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남아있지 않은, 사진과 금반지 몇 개만 남은 행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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