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2003년 11월13일은 나의 인생과 아들의 인생에 한 점을 찍은 날로 기록해둬야겠다. 그날 밤 아들은 나의 품을 떠났다.
처음으로, 정말 그 아이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혼자 자겠다고 말한 것이다. 좀 놀라운 고백인지 몰라도 나는 아들이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아들과 함께 잠을 잤다. 애기때는 당연히 걱정이 되서였고, 자라면서는 아이가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편은 저러다가 마마보이 된다며 우리 둘을 떼어놓기 위해 수없이 아들을 얼르고 달래고 협박도 하고 협상도 벌이면서 애를 써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혼자 잘거야, 3학년이 되면, 5학년이 되면, 중학생이 되면… 아들도 열심히, 진심으로 약속했으나 그게 자기 맘대로 되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나도 뭐 좋아서 그런건 아니다. 단지 아들이 붙들고 놓지 않으니 무정하게 뿌리치는 엄마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도 영화에서처럼 침대에 아이를 뉘어놓고 굿나잇 키스를 해준 후 불을 끄고 나오는 우아한 엄마의 모습을 연출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도무지 잘 안되었다.
유난히도 안 자는 아이, 때론 11시가 넘어도 잠들지 않고, 침대에 집어넣으면 어찌나 붙잡고 안 놔주는지, 밖에 할 일이 항상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나로서는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제발 혼자 좀 들어가 자라! 화도 내고, 엄마 좀 봐주라, 응? 사정도 하고, 너 도대체 몇 살인데 잠도 혼자 못 자니? 비웃어도 보고, 지금부터 엄마가 해야할 남은 일들이 이만큼이다 설명도 하지만, 방문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섰는데야 꼼짝없는 노릇이었다.
’잠만 재워놓고 살짝 나오리라’ 다짐하고 따라 들어가지만 하루 종일 널뛰듯이 일하고 그 시간쯤이면 물먹은 솜처럼 돼버리는 나는 침대에 눕기가 무섭게 아들보다 먼저 잠에 빠져버리는 일이 거의 매일이었다.
더 괴로운 것은 몇년전부터 아들의 덩치가 나보다 커지면서 풀사이즈 침대가 비좁아진 것은 물론이고 내가 아들을 데리고 자는게 아니라 아들에게 안겨 자는 꼴이 된 것이다. 그런데다 한창 자랄 때여서인지 자면서 사정없이 나를 차고 때리고 밀어대는 바람에 매일밤 잠을 설치며 ‘매맞는 여인’이 되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앞이 안 보이던 차에 그날 밤 뜻하지 않은 선언을 듣게된 것이다.
여느 날처럼 얼른 들어가 자라 한마디했더니, 아들이 일어서 조용히 방으로 간다. 습관적으로 따라 들어가다가 문득 느낌이 이상해서 물었다. 너… 엄마 없이 잘 수 있어?
응, 나 혼자 잘 수 있어
나는 너무 놀라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너 거짓말이지? 오, 노! 너 엄마 없인 못 잘거야 후회하지마, 지금 안 잡으면 엄만 다신 안 온다
별소리를 다했으나 아들은 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괜찮아 엄마, 혼자 잘께 이런다.
아, 이제 해방됐구나,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시원하면서도… 왠지, 왠지 섭섭하다.
이제 아들은 내 품을 떠난 것이다.
얼마전에 아이는 남편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며 여자(girl)가 좋아졌다고 하더란다. 왜 어릴 때는, 보이들은 걸이 싫다고 하고, 걸들은 보이가 싫다고 내외 아닌 내외를 하며 삐죽거리지 않나. 아들도 오랫동안 그랬었는데 이제 이성에 눈을 뜨는 모양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드는건가. 하긴 내년 1월이면 열세살, 틴에이저가 되는데 나 그맘때를 생각하면 엄마고 가족이고 무슨 관심이 있었나. 친구들과 사춘기를 앓느라 떼지어 다니며 감상에 젖어 살았던 것 같다.
그래, 이렇게 조금씩 떠나는거지. 품안에 자식은 이제 끝!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갈 것이다. 그 모습을 섭섭해하기보다 인조이하며 치마폭을 열고 엄마보다 친구가 되어줄 마음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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