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자 한국일보 일요일 자의 ‘광화문 칼럼’에는 신년 벽두에 으레 기대됨 직한 뜻깊은 수상이나 예견이 아니라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라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평이 실렸다. 그러한 글을 구태여 쓰는 이유를 필자인 문학평론가 김동식씨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천박함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 보이는 시대에 문화적 다양성과 전복성이 시대의 저급함을 버텨나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다시 말해 현실이 하도 천박하고 불결하다 보니 현실에서 어느 정도 분리된 문화의 세계 속에서 도피처와 위안을 발견한다는 말이다. 세상이 어렵고 혼란할 때 지식인들이 현실 도피적인 작품 세계를 통하여 정신적인 위안처를 발견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근래 영화화되어 흥행에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반지의 제왕’이 영국에서 쓰여진 것은 1936년부터 1944년 사이 유럽이 어둡고, 때로는 절망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는 동안이었다.
그 후 잊혀졌던 이 작품은 1960년대 말에 이르러 월남전쟁이라는 현실이 진저리치게 싫었던 베이비 부머 세대에게 다시 발견되어 그 당시 반전 히피족들에게 가장 사랑 받던 책이 되었었다. 월남전이 끝난 후 30여 년 동안 또다시 잊혀졌던 이 공상적이랄까 신화적이랄까 아니면 동화적이랄까 하는 이야기가 지금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일방적인 무력과 부의 지배구조 안에서 다시금 세계인들의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악은 궁극적으로 권력이나 무력에 의하여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무력하지만 정의로운 개인의 결단과 충절로 극복되어진다는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전혀 다르면서도 괴상하게 비슷한 두 현실의 사이에서 살아야만 하는 우리들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모범적인 법치국가임을 자처해 오던 미국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취임 이후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합법인지 불법인지 알쏭달쏭한 정책이 숨막히는 속도로 연이어 실행되고 있다.
지난 12월 한 달만 해도 연방 사법부는 4번에 걸쳐 부시행정부의 정책이 불법임을 선언하였다. 주로 환경보호법을 위반하는 행정명령들과 헌법 및 국제법에 보장된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한 조처들에 대한 이 판결들은 과연 현 행정부가 얼마나 진지하게 법을 지킬 용의가 있는지 의심케 한다.
한편 한국에서는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정부를 자처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여와 야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역겨운 부패와 무능, 졸렬하고 불법적인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거듭되는 궤변으로 국민들을 지겨울 정도로 괴롭게 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보아도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정치,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기, 악몽처럼 다가오는 북한 위협, 미국의 윽박지름 아래에서 보내기 싫어도 보낼 수밖에 없는 이라크 파병,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가볍고 감미로운 로맨틱 코미디에서 도피처를 찾을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이 불쌍하다.
하기는 불법이건 합법이건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대통령 밑에서 외로운 프로도(Frodo)의 시련을 보며 위안을 찾아야 하는 미국인들도 더 불쌍하면 더 불쌍하지 덜 할 것이 없다. 그 양쪽의 현실 속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야 하는 우리들은 아마도 제일 불쌍하지 않을까?
김철회 법정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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