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전(古典)을 곱씹어보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방향을 구하게 된다. 책장을 넘기며 책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현실로 끌어내어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고 나 자신이 책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다. 그래서 책을 통해 만끽하는 세상은 어떠한 영상매체로도 흉내낼 수 없는 것 같다.
최근 ‘무궁화 노인회’라는 한 노인단체가 한인노인회관 건립조건으로 미국의 유명 자선단체인 와인버그재단으로부터 70만달러라는 거액의 지원금을 약속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노인들이 어떻게 이런 큰 일을 해냈을까 하던 궁금증은 취재를 해보니 의외로 쉽게 풀렸다.
마치 예전에 읽었던 고전 한토막을 듣는 것과 같아 소개해 본다.
옛날 중국에 나이가 90인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우공은 마을을 가로막고 있는 험준한 두개의 산 때문에 왕래하기가 불편하자 가족과 의논하여 산을 옮기기로 한다. 이들이 하는 일을 보고 이웃에 사는 꼬마도 동참한다. 그러나 지수라는 사람은 우공이 어리석다며 조롱하고 다녔다. 이에 우공은 자신 대에서 일을 못끝내면 자자손손 계속해 언젠가는 평평해질 날이 있을 거라며 산 옮기는 일을 계속했다. 이말에 놀란 산신은 천제에게 고했고 천제는 우공의 끈기에 감복해 두 산을 옮겨주었다. 이 우화는 중국의 고전 열자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以山)’ 이야기이다.
중국의 우공처럼 아흔살 노인은 아니지만 일흔살이 훨씬 넘은 노부부가 타인의 도움없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자선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타내며 노인회관 건립을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무안한 심정이다. 한인 커뮤니티가 당연히 했어야 할일을, 그것도 누구보다 젊은 세대가 솔선수범 했어야 할 일을 부끄럽게도 일흔 넘은 노부부가 말없이 일구어냈으니 말이다. 이들 노부부는 지상낙원이라는 하와이에 살면서 다른 민족들은 다 갖고 있는 그 흔한 회관건물 하나 변변히 갖지 못해 여기저기 쪽방에 노인회라는 명패 하나 걸어놓고 말동무와 화투로 하루를 소일하는 노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일념에 자신의 품과 자비를 들여 1년여를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당신들도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노후를 누려야 할 노인인데 다른 노인들의 편안한 쉼터를 만들기 위해 이리도 애를 썼던 것이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해 고개를 들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자책감으로 그저 넋 놓고 앉아 먼산을 바라보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는 않다.
새 이민100년 시작의 원년을 맞아, 그리고 커뮤니티 노후대책 프로젝 추진 10년대계 첫 단추를 채우는 시기를 맞은 우리 한인사회는 마치 우공의 마을을 가로막고 있던 험준한 산처럼 이제부터 해야할 일들이 우리 앞에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할일은 무엇이고 어떤 배역을 담당해야 하는가?
주연을 원하는 이도 있겠지만 우공이라는 주연은 이미 정해졌다. 남은 배역은 조연급인 ‘꼬마’와 ‘지수’역이다. 꼬마역을 맡을 것인지 지수역을 맡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판단이고 책임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취재를 마치며 돌아서는 기자의 두손을 꼬옥 붙잡고 어루만지던 할머니의 손길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우리 모두는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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