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밖에는 꽃이 한창이다. 넓은 벌판을 수놓았던 파피꽃이 지자, 자카란다의 열정이 온 도시를 덮어버리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이 바로 꽃의 향연일 것이다. 이렇게 꽃이 만발할 때면 시야를 다른 곳으로 두고 싶어도 어느 새 눈길은 꽃에 가 있기 마련이다. 꽃의 유혹. 그것은 정말로 참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일평생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유혹에 빠진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권력의 유혹, 금전의 유혹, 이성의 유혹 등인데, 요즘의 세상에는 권력을 잡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에 권력의 유혹이 가장 유혹적이다. 역사를 보면, 권력을 잡은 사람들도 종종 여자의 유혹에 빠져 나라를 망친 일이 있었다. 경국지색이라는 말은 이런 데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권력이 있으면 자연히 어떤 여자도 취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고,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추세이니, 당연히 경국지색이라는 말은 효력이 없어진 셈이 되어 버렸다. 또한 금전으로 되지 않는 일이 없다는 금전제일주의 사상에 따라 남녀노소 따질 것 없이 모두 금전 선호 사상을 갖게 되었으니, 금전의 유혹도 또한 대단한 것이다.
역사에서 보면 다른 유혹을 다 물리친 채, 오직 사랑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볼 때 이것도 일종의 유혹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랑의 유혹. 얼마나 감미로운 말인가. 사실 꽃의 유혹보다 더욱 강렬한 것이 사랑의 유혹일 것이다. 그래 서 옛사람들은 사랑의 유혹을 종종 꽃의 유혹에 비유하곤 했다.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시간마다 유혹에 빠지거나 유혹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유혹을 하건 유혹에 빠지건 간에, 그것이 아름답고 승화된 것이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 진다.
어릴 때 꽃의 유혹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는 꽃을 보기만 하면 캐서 집에다 옮겨 심곤 했다. 그런데 그 못된 버릇이 바로 양귀비의 유혹 때문에 깨져 버렸다.
비가 몹시도 오는 날, 내리던 비를 핏빛으로 물들이던 그 처량하고도 고혹적인 양귀비의 하늘하늘한 모습에 나는 침을 삼키면서 그것을 파내 책가방 가운데에 가지런히 넣고는 마구 집으로 뛰어왔다. 가슴에는 양귀비의 핏빛이 뭉텅뭉텅 끊어지는 데도 나는 그저 그것을 손에 넣었다는 기쁨으로 그 비를 맞으며 마구 달렸다. 그리고 집 마당 한 모퉁이에 그것을 정성 들여 심었다. 비가 오는 날 꽃을 옮겨 심으면 좋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
다음 날 아침 활짝 갠 하늘을 보며 기지개를 켜다가 나는 마당 모퉁이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아름다운 양귀비가 시들시들 말라죽어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있던 땅을 그렇게 사모했기에 다른 땅에 옮겨 심으면 바로 죽어 버리는 양귀비꽃. 나는 그때서야 무조건 유혹을 해소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했다.
꽃이 현란하게 시야를 유혹하는 시절. 그 유혹이 그리 나쁘지만 않다면, 한번은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그 유혹에 온 몸을 담가 버리는 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정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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