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한국문화의 위치를 생각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문화와 문명의 차이점을 알아야 하겠다. 이 두 가지 어휘의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문화는 철학에서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 향상하려는 인류의 이상을 실현시켜 나아가는 정신적 활동(culture)이고, 문명은 사람의 지혜가 열리고 정신적 생활이 풍부하고 편리하게 됨을 말하는 civilization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든다면 김치를 먹거나, 한글로 편지를 쓰는 것은 독특한 문화생활이다. 우리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보편적인 문명생활이다.
컴퓨터나 자동차는 세계 어디서나 조건만 허락되고 조작기술만 알면 누구에게나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김치를 먹거나 한글을 사용한다는 것은 한민족의 특수성이며, 컴퓨터나 자동차의 사용과 같은 보편성은 없다. 다시 말해 문명이 보편성을 지녔다면 민족의 문화는 특수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진입하였고 얼마 더 있으면 선진국이 된다는 표현은 경제적인 면에서의 이야기이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그런 표현이 타당치 않다. 지구상에 어느 민족이 가진 문화라 할지라도 거기에 우열의 등급이 있을 수 없다. 다양한 문화들 사이에는 오직 서로 다른 점, 차이점만이 있을 따름이라는 표현이 옳다.
한국이 아직은 경제면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지 못하였다는 언론의 표현에 익숙해져서, 한국문화에 대하여 열등감을 갖는 일이 있다면, 이는 착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뜻에서 우리의 독특한 문화가 반만년의 역사를 통하여 세계 인류 문화사에 기여하고 있음을 자부하는 것이야말로 한국문화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선 한국문화 교육이 왜 필요한가. 한국의 초·중·고의 교육과정에는 ‘한국문화’라는 교과목이 없는 줄 아는데 왜 미국 각 지역에 있는 한국학교에서는 이 교과를 가르쳐야 하는가. 교육과정의 제정은 국가·지역사회·학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차세대 교육 목표와 직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이들의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 내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풍요하고 독특한 한국문화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언어, 세시풍습, 행사, 예술 등이 모두 훌륭한 교육자료이다. 학교에서는 그들의 체험을 중심으로 하여 학습을 진행하면서 인식의 심화작용을 꾀하게 된다. 즉 한국은 독특한 문화가 가득 담긴 큰그릇인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 한국계 어린이들은 다양한 미국문화 속에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목표를 세워서 의도적으로 계통적으로 ‘한국문화’ 교육을 해야만 한다. 즉 한국문화의 전수는 기성세대의 의무인 것이다.
해외에 있는 각 가정이나 교육기관에서는 반드시 한국문화 교육을 포함해야 하며, 이는 전통적인 생활문화 교육을 뜻한다. 한국적인 생활문화 교육은 주변의 사물 관찰→내용의 이해→체험→생활화→새로운 문화 창조로 이어지도록 목표를 세우고 체계화시켜야 한다. 가능한 한 이론에 머물지 말고 직·간접의 체험을 시킴이 요구된다.
한국문화 교육의 목표는 문화 속에 녹아있는 선조들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한국계 미국인임을 자부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한국문화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어린이들이 미국의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이에 적응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인정하고 사랑할 때 다른 사람이 가진 것도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일은 전통적인 한국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지 않는다면 급격한 속도로 소멸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예는 세계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어느 분이 말하였다. ‘세계의 어떤 문화든지 소멸된다면 그것은 인류사의 큰 손실이다’라고.
허병렬/교육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