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체류한 3주 동안은 지하철 안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지하철은 신속하고 정확하기에 약속시간을 지킬 수 있고 러시아워가 지나면 혼잡하지도 않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있는 것이 생소했다.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려는지 잠시도 전화기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통화 될 때까지 계속 버튼을 누르는 사람, 전혀 타인을 의식하지 않은 채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게임을 하는지 전화기를 켜 놓고 계속 바쁘게 손놀림을 하는 사람, 정말로 자는 것인지 자는 척하는 것인지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 그 속의 백미 같이 신문을 읽거나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내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간이 낮 시간인데 많은 사람들이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그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들의 모습에서 밝음이라든지 패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회정서가 마치 웃음이나 여유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작심한 듯한 인상마저 풍기는 그런 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자리를 양보하는 일도 드물었다. 간혹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더 연세든 분에게 좌석을 권하는 모습은 봤으나 젊은층들은 좌석 양보도,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어도 받아 주지 않았다.
어느 날 오후, 학생들 하교시간대라서 지하철 내부가 다른 날에 비해 혼잡했다. 중학생 정도의 학생 몇 명이 앉아 있는 앞으로 등산화에 배낭을 맨 노인이 다가섰다. 그때 학생들은 서로 손장난을 하고 있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눈을 감았다. 서 있던 청년이 한 학생을 흔들었다.
“학생, 자리 좀 양보하지, 노인이 서 계시잖아?” 그러자 그 학생은 눈을 감은 채 “피곤해서 일어설 수가 없어요. 경로석으로 가면 되잖아요?”했다. 청년은 다시 “젊은 녀석이 뭐가 피곤해 어서 일어나 봐.”
청년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뭐라고? 젊은 녀석?, 왜 반말이야, 기력이 없으면 집에서 곱게 쉬지 자기들 건강 챙기려고 등산 다니면서 산에 갈 때는 기운이 남아도는데 지금은 갑자기 지치셨나, 이 시대의 학생들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 자리를 양보 받을 사람들은 학생들이야.” 의외로 일격을 당한 청년은 너무 어이가 없었던지 옆에 서 계신 노인에게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한마디를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노인도 곧 하차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상황이었다. 주위에 아무도 거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그 장면을 보면서도 무관심했다. 그것이 더 큰 충격이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거창하게 내세우지 않아도 우리 민족은 충효를 으뜸으로 삼고 있는 나라가 아니었나. 한 단면의 모습이기는 하나 오래 전에 떠나온 고국의 이런 변화상이 놀라웠다.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이 아닌가? 아직 카네이션의 향기도 채 가시지 않았을 터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가정교육이란 말은 구시대의 낡은 유물이 되었는가. 집집마다 하나 자식이라 사랑만 퍼부었지 예의와는 담을 쌓고 살았단 말인가.
이번 고국 방문은 이래저래 마음이 어두웠다. 그런 곳에서 떠나와 사는 내가 다행한 것인지 또 그런 사회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내가 과연 옳은 것인지 그저 한없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뿌리가 그 곳이고 사랑하는 고국이기에 안정된 사회,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사회, 삶의 여유와 질을 높여 잘 사는 사회가 되기를 고대할 뿐이다.
유숙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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