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을 다녀오는 사람들마다 이구동성으로 본국 걱정을 많이 한다. 사람들이 완전히 두 패로 나뉘어 한쪽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다른 한쪽은 울분만 삼키고 있다고 개탄한다.
총선과 탄핵기각 후 한국에서는 공개적으로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말 해봐야 수구 보수로 몰리기 십상이고, 어차피 유권자들이 다수결로 선택한 길이니 어쩌겠느냐는 체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누가, 왜, 무엇을 위해, 어디로 한국을 끌어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답답해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에서 있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자축연은 그 답의 힌트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총선 승리와 탄핵 기각을 통해 기어코 권력을 완성했다. 그 흥겨운 자리에서 42세 이하 386세대 당선자 33명이 운동권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했다.
누가 그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군사독재 정권시절에는 부르는 것만으로도 빨갱이나 반정부 과격분자로 몰려 감옥으로 끌려가게 했던 그 노래가 아닌가.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그 변화의 주역은 386으로 표현되는 그들과 그들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이다. 투표에 참가한 유권자들의 절반 이상이 그들을 지지한 이상 그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질 생각은 없다.
386 그들은 암울했던 군사독재 체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다. 그 순수한 눈에 비친 그 시절 세상은 온통 불의와 모순 덩어리였을 것이다.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정권과 그들을 인정하는 미국이 죽도록 미웠을 것이다. 그런 정권에 천문학적 정치자금을 바치면서도, 근로자에게는 최저생계비를 주는 것에도 인색했던 재벌을 타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제대로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도와주는 언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들의 울분을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의 씨앗이 거기에 뿌려져 있다. 젊은 시절을 그렇게 보내다 보니 정서적으로 투쟁적이며 독선적이지 않는지.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자신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적개심을 드러내지는 않는지. 사회주의에 경도돼 평등, 분배와 같은 명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라는 얘기다.
지난 1년여 한국사회를 그토록 피곤하게 만든 실체는 바로 그것이다. 그 중심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세상을 바르게 변화시키자는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겠다. 그렇게 해보라고 국민이 밀어준 것이다. 국민이 준 권한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이제 힘을 얻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들부터 변해야 한다. 세상은 변했는데 80년대 식 사고와 행동방식을 강요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내재된 울분을 삭히고 객관적인 균형감각과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실용적인 정책을 개발할 수 있는 실력과 세련된 국제감각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하기에도 너무 시간이 부족하다. 지금 운동권 노래나 부르면서 자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면 지금의 변화는 2~3년 후 또 하나의 정치실험으로 끝날 수도 있다.
안병선 샌프란시스코지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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