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중략>/아버지/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본 건/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중략>/자식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다.” 시인 손택수의 시 ‘아버지의 등을 밀며’이다.
아버지는 속으로만 우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울음은 어머니의 울음보다 농도가 몇 십 배는 짙을 것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가장 어른인체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사랑의 행동이나 표현의 선물도 잘 못하지만 혼자 있을 때 높은 산에 올라 “사랑한다”고 외치는 큰사랑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서 내 아버지를 본다.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어머니는 자식이 자라는 과정 중에 더 많이 심리적 신체적 시간적 투자를 하기에 자식과의 심리적 연대감, 책임감이 큰 반면 아버지들은 자식 사랑을 어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 차이일 것이다.
아버지는 가정이란 짐을 어깨에 지고 먹이를 구하려 동분서주하고 자식들에게 어떤 마음의 양식을 골라 먹여야 하는가를 늘 고민하는 사람이다. 가족이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찾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념은 없고 경제만 남은 세상에서 자식들이나 아내에게 ‘돈 버는 기계’ 정도로밖에 취급되지 않을 때 아버지는 고독하다.
마흔 여덟이란 짧은 생을 외롭게 살다 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 사랑이 그립다. 가정보다는 시와 학문과 나라와 민족문화 발전에 시간을 더 쓰셨던 나의 아버지, 세상적 추억과 재산을 많이 남겨주지는 못하셨지만 고상한 정신을 듬뿍 선물로 주신 아버지, 어떠한 허물도 다 용서하고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으셔서 마음만은 언제나 자식들을 위해 항상 대기 상태였던 아버지, 당신이 추구하는 것이 옳다면 왜 그것이 좋고 옳다는 가를 말씀 대신 몸소 보여주신 아버지. “향기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던 아버지.
결코 채찍을 들지 않으셨으나 들으셨더라도 우는 마음으로 드셨을 아버지, 아무리 화가 나셔도 자식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았던 아버지, 자식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예의를 갖추어 주셨던 아버지, 가족 앞에서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 살아 계셨다면 여든 넷이실 아버지, 그 아버지는 큰 새가 되어 저 건너 세상으로 날아가셨다. 거기서 누굴 만나셨을까.
조광렬/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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